황명강 지면 발표詩

2007 사람의 문학 여름호 - 폭염 외 1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18. 11:07
사람의 문학 2007 여름호에 발표//폭염, 신선사에 젖다.
 
 
 

폭염

 



황명강

 



동대구역 광장,
발자국들 우르르 팝콘처럼 흩어진다
그늘 쪽 벤치, 땀 젖어 눅눅한 팝콘들이
장기알을 느릿느릿 굴릴 때
짓눌린 그늘 썰며 멀어져가는 사이렌소리

라일락꽃 흩날리던 늦봄부터
비닐봉지처럼 굴러다녔다는 여인,
장난감인 양 만지작대던 바퀴소리 내버려 둔 채
막 시립병원 영안실로 실려갔다

급체한 듯 햇볕은 사지 퍼덕이며 뒹굴고
오늘따라 화단의 샐비어는 목 쉬도록 소릴 지른다
동침의 밤들 닦아내다 무심히 돌아다보는
돌계단, 무엇을 줍겠다는 걸까

어깨 처진 비둘기 몇이 계단 아래를 서성거린다
열손가락 지문조차 없었다는 그녀
원앙금침 하얀 시트 속을 파고들고 있을까
수억의 길, 슬며시 들치고
이족을 향해 빙긋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

파란불이 켜지자 매미소리 씽씽 내달리고
플라타너스 잎은 화려한 죽음을 위해 부풀기 시작한다
동창 일곱과 흐드러지게 비벼대는 늦은 점심,
시뻘겋게 버무린 냉면을 터질 듯 밀어 넣는다

 


 

 

 

 

신선사에 젖다

 


황명강

 

 

 
비탈길 오르느라 기울어진
마음의 난간
빗방울 굴러 내린다
주인 없는 절간 마당
바람 불자 수북수북 법문 채운 수국이
스님 대신
잘 익은 말씀 하나
내 발등에 툭, 떨어뜨려 준다
볕 나면 나는 대로
빗방울 들이치면 들이치는 대로
벌떼처럼 드나드는 저 무상의 법문들!

무릎 꿇은 돌탑은
득음의 목청 매단 채
후줄그레 합장하고 선 욕심을
빙그시 내려다 본다
껍질 벗지 못한 내 안으로
휘감겨드는 빗줄기,
생나무처럼 웅크린 한쪽이
점점 깊어지는데
수국수국
몸 열어 세상의 얼룩 지우는 소리
산비탈 움켜쥐고 올라온 청개구리도
제 어미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