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지면 발표詩

2007 계간 서정시학 여름호 - '얼음공주'외 1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18. 11:06

계간 서정시학 여름호  얼음공주 외 1편 발표

 

 

 

얼음공주

 

 

 

황명강

 

 

 

격자무늬 창을 주저앉힌 방

기타줄에 갇힌 열사흘이 뱅어포처럼 굳어버렸어

오늘은 그녀

부드러운 혀와 음성을 손질하는 날이라

가늘고 높은 음을 골라야 하는데

비틀린 손가락이 자꾸만 코드를 헛짚고 있어

 

쌓이는 싸락눈처럼

흰 붕대가 욱씬대는 두눈 칭칭 동여매던 그날부터

문밖으로 이어진 길은 식어가고 있었지

잘린 붕대의 끝을 잡고 깜깜하고 긴 며칠을 걸었어

허방 건너 여섯 가닥 현이 회전그네처럼 돌아가는 곳,

심장만 할딱이며 서 있는 그녈 만났지

 

얼음기둥 같은 그녀, 맨 먼저 팔을 꺼내주고 싶었어

익숙한 C코드를 손에 쥐고 하루를 두드리고 깎아냈지

매끈한 두 팔, 다음은 동그란 어깨

억새꽃같은 머리칼 뒤척이며 그녀

오늘은 노랠 부르겠다는군

 

아멜리아의 유언, 슬픔의 성당, 우두둑

그 붉은 녹물의 공구들이

포르테 또는 아다지오로 별꽃을 피우기 시작했지

곁가지 뿌리 서로 엉킨 채 하늘 헤엄치는 얼음나무들

투명한 뼈로 우는 쇠기러기,

이젠 붕대를 놓고도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아

모든 경계가 사라진 곳

내일이면 뜨거운 얼음궁전에 닿을지 어떻게 알겠어

 

 

 

 

 

 

 

이팝나무에게 배우다

 

 

 

황명강

 

 

 

창이란 창은 모두 열어 제겼나

이팝 한 무리 달려 나온 공원 마당은

돌멩이도 불 켜들고 이마를 조아린다

겨우내 걸어 잠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푸들푸들한 꽃들의 기세를 보니

사랑을 했다면

만 번은 까무러쳤다 깨어났을 것이고

치세治世를 논했다면

국회의원 몇쯤은 거뜬히 갈아치웠을 법하다

수억 개의 창 일제히 열었다 닫았다 하는

수억의 마음 스위치 하나로 다스릴 줄 아는

저 나무의 지혜를,

하나 뿐인 창으로 훔쳐보는

흐릿한 내 마음,

이름 한 줄 남기고 싶은 욕심 접고

창문부터 닦으라는 이팝나무

불같은 말씀을 이슥하도록 듣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