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지면 발표詩

2007 '현대시학' 7월호 '일몰의 식탁'외 1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18. 10:54
2007 현대시학 7월호 일몰의 식탁 외 1편 발표

 

 

 

일몰의 식탁


 

황명강


 

내가 배추의 속살을 파먹고 배추가 내 허기를 파먹고

배추의 목젖에 내가 걸려들고 내 눈물샘에 배추가 못 박히고,

끔찍한 저녁 일곱 시

 

배추벌레가 배추잎에게 햇살이 어둠에게

사랑하는 몸 갉아먹으며 사는 세상의 모든 것들,

어스름 다독이는 하루살이떼에게 화해를 배우는 시간


식탁은 뭉툭한 식욕 감춘 채 장미꽃병을 어루만지고

꿈틀대는 배추의 혈관 씹으며 나는

우아한 레이스 걸친 깐쏘네의 멍을 마신다


살아남은 것만으로 구부러진 길을 심판할 수 있을까

흘리지 못한 눈물로 건배하는 일몰의 성찬,

이천 년 전 내 손가락을 아작아작 씹는다


골목 안을 서성거리던 어둠이 창틀 핥아대는

배부른 저녁 아홉 시

나를 송두리째 삼킨 배추가 눈을 감는다

 


 


 


 


 동행



황명강



튀김솥에 갇힌 길들이 버둥거린다

수의치고는 호사스런

튀김옷 한 벌씩 뒤집어 쓴 개구리들이

꽃송이처럼 벙싯 떠오른다

물풀 헤치던 부드러운 유영도 딱딱해진다

키의 스무 배는 됨직한 플라스틱 볼을

헉, 뛰어 넘다가 주저앉은 길들

깨진 유리잔 아래

말랑말랑한 공기의 입술도 파랗게 떨고 있다

앞다리보다 먼저 길 열던

실핏줄의 달변

사내의 젓가락 끝에서 움찔댄다

몇 겹 생을 매단 꽃밭침같은 물갈퀴

튀김냄비의 기름이 개골개골 끓는다

울어보지 못한 바위 대신 신명나게 울어주던

털구름 접어 풀잎의 상처 덮어주던,

부드럽고 순한 눈알이 사내를 올려다본다

현관문은 굳게 닫혀있고

베란다는 피우지 않은 꽃들로 소란스럽다

흐물흐물 입맛 다시며 웃는 사내,

무덤 같은 입이 개구리의 뒷다리를 마저 삼키자

기다렸다는 듯

창가에 기대섰던 둥근 노을이

사내의 全身을 뼈째 씹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