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지면 발표詩

2007 계간 '문학나무' 여름호 '낙지' '물의 옷' 발표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18. 11:01
 
 

계간 문학나무  2007 여름호

 

 

 

 

낙지

 

 

 

황 명 강

 

 

생애 최초의 반성문을 쓴다

이 빠진 횟접시에 누워 빨판을 뒤집는다

두 개의 귀와 두 개의 눈이 끌어다 모은 길들

토막 난 채 구불텅거린다

 

봄 여름 가을 몽땅 가져다 준 이에게

쩡쩡 얼어붙은 겨울강을 내주었다고 쓴다

누군가에게 들켰을 얼룩들

몸 밖으로 베어나와 나냐너냐

부끄러운 문장의 느낌표처럼 미끈거린다

 

하루 물질을 끝낸 해안선이 돌아오고

채석강은 긴 소매 펄럭이며

그녀를 맞고 있다

칠억 년 껴안았을 어깨와 가슴이

처음인 듯 맨살 포개며 서로를 문질러댄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접시 모서리에 누워 구물구물,

이 세상과의 단 한번 뜨거운 약속

소신공양을 다짐한다

 

 

 

 

 

물의 옷



황명강




줄지렁이 두 마리

껴안고 돌틈에 누워있다 곁의

달개비 잎에 고인 하늘이

부드러운 빛 뿜어 그들을 덮는다


꽃잎 건너뛰던 물방울

툭 건드려도

요지부동 그들은 지금

질긴 절정의 동굴을 파고 판다


닳은 겉옷이야 허물 아니듯

붉은 겹주름까지 안으로 궁글려

깊고 투명한 물의 옷이 되어간다


나즈막한 밭둑 저 아래

물조리개 든 한 사람 어깨가

못물처럼 고르게 흔들린다

아프도록 부신 은빛 단추,

노란 원피스로 펄럭이는 내 반나절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 채

經 읽듯 찰랑거린다

 

 

 

 

 

 

시작노트

 

나는 언제쯤 나의 배반의 끝에 가 닿을까.

투명한 한 방울의 물로 엎드려 있고 싶은 날에도

문 밖 세상은 나에게 몇 겹 옷을 입히려고 날뛴다.

어둠에 익숙한 몸 끌어안고

이건 내가 아니라고 몸서리를 치면서도

잠 들고 다시 깨어났다.

아하, 나는 분명 어딘가를 향해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