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서정시학 여름호 얼음공주 외 1편 발표
얼음공주
황명강
격자무늬 창을 주저앉힌 방
기타줄에 갇힌 열사흘이 뱅어포처럼 굳어버렸어
오늘은 그녀
부드러운 혀와 음성을 손질하는 날이라
가늘고 높은 음을 골라야 하는데
비틀린 손가락이 자꾸만 코드를 헛짚고 있어
쌓이는 싸락눈처럼
흰 붕대가 욱씬대는 두눈 칭칭 동여매던 그날부터
문밖으로 이어진 길은 식어가고 있었지
잘린 붕대의 끝을 잡고 깜깜하고 긴 며칠을 걸었어
허방 건너 여섯 가닥 현이 회전그네처럼 돌아가는 곳,
심장만 할딱이며 서 있는 그녈 만났지
얼음기둥 같은 그녀, 맨 먼저 팔을 꺼내주고 싶었어
익숙한 C코드를 손에 쥐고 하루를 두드리고 깎아냈지
매끈한 두 팔, 다음은 동그란 어깨
억새꽃같은 머리칼 뒤척이며 그녀
오늘은 노랠 부르겠다는군
아멜리아의 유언, 슬픔의 성당, 우두둑
그 붉은 녹물의 공구들이
포르테 또는 아다지오로 별꽃을 피우기 시작했지
곁가지 뿌리 서로 엉킨 채 하늘 헤엄치는 얼음나무들
투명한 뼈로 우는 쇠기러기,
이젠 붕대를 놓고도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아
모든 경계가 사라진 곳
내일이면 뜨거운 얼음궁전에 닿을지 어떻게 알겠어
이팝나무에게 배우다
황명강
창이란 창은 모두 열어 제겼나
이팝 한 무리 달려 나온 공원 마당은
돌멩이도 불 켜들고 이마를 조아린다
겨우내 걸어 잠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푸들푸들한 꽃들의 기세를 보니
사랑을 했다면
만 번은 까무러쳤다 깨어났을 것이고
치세治世를 논했다면
국회의원 몇쯤은 거뜬히 갈아치웠을 법하다
수억 개의 창 일제히 열었다 닫았다 하는
수억의 마음 스위치 하나로 다스릴 줄 아는
저 나무의 지혜를,
하나 뿐인 창으로 훔쳐보는
흐릿한 내 마음,
이름 한 줄 남기고 싶은 욕심 접고
창문부터 닦으라는 이팝나무
불같은 말씀을 이슥하도록 듣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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