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 김수영 시인 (조선일보)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인 추천시 100편 -제 2편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 좋은 詩 모음 2008.03.05
해 - 박두진 시인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인의 추천시 제 1편 ▲ 일러스트= 잠산 쥐띠 해가 밝았다.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킬 새해가 밝았다. 현대시가 출발한 지 100년이 되는 해가 밝았다. 대통령 당선자는 근심과 탄식의 소리가 멈춘 ‘생생지락(生生之樂)’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어둠으로 점철된 현대사 속에서.. 좋은 詩 모음 2008.03.05
모슬포에서 - 김영남 시인 모슬포에서 김영남 오래도록 그리워할 이별 있다면 모슬포 같은 서글픈 이름으로 간직하리. 떠날 때 슬퍼지는 제주도의 작은 포구, 모슬포, 모-스-을 하고 뱃고동처럼 길게 발음하면 자꾸만 몹쓸 여자란 말이 떠오르고, 비 내리는 모슬포 가을밤도 생각이 나겠네. 그러나 다시 만나 사랑할 게 있다면 .. 좋은 詩 모음 2008.02.29
여승 - 백석 시인 여승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냄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 좋은 詩 모음 2008.02.29
아주 넓은 등이 있어 - 이병률시인 아주 넓은 등이 있어 이병률 종이를 잘 다루는 사람이고 싶다가 나무를 잘 다루는 사람이고 싶다가 한때는 돌을 잘 다루는 이 되고도 싶었는데 이젠 다 집어치우고 아주 넓은 등 하나를 가져 달[月]도 착란도 내려놓고 기대봤으면 아주 넓고 얼얼한 등이 있어 가끔은 사원처럼 뒤돌아봐도 되겠다 싶은.. 좋은 詩 모음 2008.02.18
최동호 시인 / 풍경이 하늘을 끌어안다 풍경이 하늘을 끌어안다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최동호 날마다 쓰는 마당에는 언제나 작별을 만들고 떠나가는 쓸쓸한 바람으로 손목 가늘어진 낙엽이 떨어진다 빗자루를 잡고 있던 손 한짝 신발도 닳을 땐 서로가 외로워 절뚝거리는 뒤축 떨어지지 않으려다 눈이 빨간 까치밥 마음 시린 동자승 .. 좋은 詩 모음 2008.02.13
상강 (霜降) 무렵 - 김영남 시인 상강 (霜降) 무렵 김영남 기러기가 지나가려 하니 쓸쓸하지, 가을 하늘아? 난 예 논두렁에서 너처럼 저물 순 없겠다. 순이 고무신 속 들국화를 보겠구나 꽃 주위 붕붕거리는 멍청이 꿀벌과 저 방죽 위 억새꽃으로 난 어딜 좀 다녀와야겠다. 좋은 詩 모음 2008.02.02
첼로처럼 살고 싶다 - 문정희 시인 첼로처럼 살고 싶다 문정희 하룻밤 쯤 첼로처럼 살고 싶다 매캐한 담배연기 같은 목소리로 허공을 긁고 싶다 기껏해야 줄 몇 개로 풍만한 여자의 허리 같은 몸통 하나로 무수한 별을 떨어뜨리고 싶다 지분 냄새 풍기는 은빛 샌들의 드레스들을 넥타이 맨 신사들을 신사의 허세와 속물들을 일제히 기립.. 좋은 詩 모음 2008.02.01
유서를 쓰는 사내 - 김충규 시인 유서를 쓰는 사내 김 충 규 식구들 모두 잠든 깊은 밤에 서재에 희미한 불 켜놓고 제 묘비명을 쓰는 사내, 그의 두 눈이 인광처럼 빛나고 창가에 와 머문 달이 벌레처럼 꿈틀거린다 유족에게 남길 한 문장의 묘비명을 위하여 그는 밤마다 문장을 다듬고 다듬는 것이었으니 혹 그 문장이 美文이라면 그.. 좋은 詩 모음 2008.01.25
흐린 날의 연서 - 함민복 시인 흐린 날의 연서 함민복 까마귀산에 그녀가 산다 비는 내리고 까마귀산자락에서 서성거렸다 백번 그녀를 만나고 한번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였다 예술의 전당에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고 먼저 전화 걸던 사람이 그래도 당신 검은 빗방울이 머리통을 두드리고 내부로만 점층법처럼 커지는 소리 당신이 .. 좋은 詩 모음 2008.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