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에서 - 곽재구시인 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 좋은 詩 모음 2008.01.20
논두렁에 서서 - 이성선시인 논두렁에 서서 이 성 선 갈아놓은 논고랑에 고인 물을 본다. 마음이 행복해진다. 나뭇가지가 꾸부정하게 비치고 햇살이 번지고 날아가는 새 그림자가 잠기고 나의 얼굴이 들어 있다. 늘 홀로이던 내가 그들과 함께 있다. 누가 높지도 낮지도 않다. 모두가 아름답다. 그 안에 나는 거꾸로 서 있다. 거꾸.. 좋은 詩 모음 2008.01.20
단풍 - 이영광시인 단풍 이영광 산들도 제 고통을 치장한다 저 단풍 빛으로 내게 왔던 것 저 단풍 빛으로 날 살려내던 것 열려버린 마음을 얼마나 들키고 싶었던가 사랑의 벗은 몸에 둘러주고 싶었던가 불난 짚시처럼 불난 짚시처럼 끓어 마침내 잿더미로 변한다 해도 좋은 詩 모음 2008.01.20
정동진역 - 김영남시인 정동진역 김영남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 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 넣고 .. 좋은 詩 모음 2008.01.18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 이기철시인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애인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 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 좋은 詩 모음 2008.01.18
숲 - 손진은시인 숲 손진은 부챗살모양 잎을 늘어뜨린 채 큰 나무가 그늘 드리울 때 작고 앙증한 줄기 끝에 여린 잎들이며 꽃을 매단 어린것들 날아오르려 퍼득거린다 솟아오르고 누르려는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이 두근거리는 몸짓들 사이로 스며들어 그 속에서 자라는 죽음이며 상처까지를 어루만지는 햇살 전.. 좋은 詩 모음 2008.01.18
무지개를 위하여-곽재구시인 무지개를 위하여 곽재구 영혼은 어디에 있어요? 영혼의 강은 �을 수 있어요? 영혼도 숨을 쉬나요? 영혼의 날개를 본 적 있어요? 그걸 좀 보여주세요 당신의 가슴에서 내가슴에 이르는 저 기나긴 다리의 이름은 무었인지요? 색색의 꿈으로 빚어놓은 저 섬세한 바람의 술렁거림은 무었인지요? 한 번도 .. 좋은 詩 모음 2008.01.18
즐거운 편지 - 황동규시인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 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 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 없이 .. 좋은 詩 모음 2008.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