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에서
황명강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꽃집의 아침은 맛깔스럽다 문턱 넘어서기 바쁘게 엉덩이 흔들며 가시 돋힌 성깔 퍼내는 장미 간신히 눈인사 받아넘긴다 노란 목도리 풀어헤친 카라는 고개 돌려 후레지아 입술을 더듬고 있다 금 간 화분의 눈빛 굳이 외면하던 호접란도 찢겨진 날개 팔딱거린다 포장지들은 생긴 대로 줄을 선다 궁상맞게 꼬리표 매단 채 실연의 상처 기억하는 가위의 입술이 파르르 떨고 있다
뽑혀져 나온 무리들, 생각할 여유 없이 꽃집여자의 각본대로 해체된다 그녀 손가락에 잡히는 순간 갈 길이 정해져 버린다 같은 뿌리 둔 혈육끼리도 속눈썹 떨면서 돌아서야 한다 눈 한번 잘못 마주치면 그들 운명 한순간에 뒤바뀌기 때문이다 쉴새없이 주절거리며 빳빳한 포장지에 둘러싸여 지금 막 길 떠나려는 장미 한 다발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 옳고 그른 생각들마저 놓아버리게 될 날을, 쓰레기통 속으로 퍽 하며 누렇게 질린 백합이 쓰러진다 놀란 파리가 다급히 날아오른다 이곳에선 그 무엇도 꽃집여자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황명강 지면 발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정시학 여름호에 발표 - 샤또마고 외 1편 (2008년 6월) (0) | 2008.06.06 |
---|---|
계간'서정시학' 신인상 당선작 몽돌 외 4편 (0) | 2008.03.26 |
2007 경주문화 - '남천2' (0) | 2008.01.18 |
2007 '시애' 창간호 - 감나무 (0) | 2008.01.18 |
2007 사람의 문학 여름호 - 폭염 외 1편 (0) | 2008.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