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지면 발표詩

서정시학 여름호에 발표 - 샤또마고 외 1편 (2008년 6월)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6. 6. 23:51

 

2008 계간 서정시학 발표시 '샤또마고'외 1편

 

 

 

 

샤또 마고*



황명강



홍등이 핀다

투명한 살갗에 담긴 바람의 피,

혀끝 휘어지는 겹음을 핥으며

붉은 씨앗들 타닥타닥 뛰어내린다

갓 깨어난 애벌레처럼 악령의 아메바처럼

수천 개 어둠 조각이 팽팽한 혈관을 흔든다


전생의 기억인 듯, 그녀

한 겹 두 겹 옷을 벗는다 허벅지 벗고

봉긋한 그리움, 입술 벗어 던진다

먼지 뽀얀 화장대 거울 속

눈썹꽃 손톱꽃 혓바닥꽃들 질펀하다


오래전부터의 악연, 그러나   

코르크마개를 따는 덴 6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1958년생 샤또마고,

비틀어 맬수록 고혹적인 눈빛의 또 다른 그녀

감전을 꿈꾸는 네거리 전광판까지

단숨에 마셔버린다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날아온 운석처럼

다음 生을  건너 갈 모반이 시작된다




*샤또마고 - 프랑스 레드와인, 와인의 여왕으로 명명됨.




명자꽃


황명강


한 여자 걸어나온다
붉은 웅덩이가 출렁거린다
째각거림 멈춘 손목시계를 풀고
구겨진 소매에 갇힌 길 벗어던지고
햇살 속으로 쏟아진다

그늘은 애당초 없었다 네 번의
교통사고에 절름발이 방목을 꿈꾸던 남자는
이십년 묵은 그녀 헌 시집마저 날려먹었다
줄 끊어진 기타줄처럼 허공을 울던
붉은 눈동자가 걸어나온다

안개 낀 밤, 야윈 가로등 아래 흐느끼던
한 남자의 등을 사랑한 적 있었고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가시 같은 詩를 훔치던 한때는,
거울 뒤쪽에서만 울울창창해지는 봄인데

원형탈모증 머리카락
연어살처럼 반지르르한 욕망의 속옷까지
벗어던지자 발끝부터 붉은 물이 차오른다
그녀 목소리, 거울처럼 짱짱해진다 천 송이
명자꽃 천 개의 웅덩이 웅덩이, 사랑이라면
눈동자를 태우는 일쯤 아무렇지도 않을
당돌한 명자꽃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