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지면 발표詩

2008 여름호 '주변인과 시' 발표 '물금역 지나며' 외 1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7. 3. 07:21


2008 계간 '주변인과 시' 여름호 발표 '물금역 지나며' 외 1편

 



 

물금역 지나며



황명강

 



기차가 물금역을 통과할 때 비가 내렸다

언젠가 젖은 종이컵에 매달리던
낯익은 눈동자가 창 안쪽

나를 들여다본다


손끝으로 더듬으면

물금물금,
내 얼굴 만지며 뛰어내리는 묵언들


새마을호는 물금역을 스치듯 지난다
펄럭이는 간이역 깃발을 지우고
돌아온 도요새 날개짓을 지우고,

 

빗줄기가 긋는 사선처럼 내 안에도
끝내 넘지 못할 경계가 있었나

벌판 지나 젖은 갈대숲으로 달려간

 
버려진적 없는 버려진 갈대의 노래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든다
기차가 물금역을 버리듯 이쯤에서 
부러진 우산같은 내 사랑도 버리리라


지평선 위로 뿌옇게

수억의 빗줄기떼 몰려온다
차창엔 그를 데려갔던 빗방울들이
장마 같은 나를 만지고 있다

 

 

 

 

 

 

 

 

나무젓가락


황 명 강


불판 위에 자글자글 웃음소리 
노랗게 익어가는 토요일 오후
빈 비닐봉지 같은 웃음 흘리던 어머니는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포장지 속
보물인 양 챙겨두었던,
불에 그을린 젓가락을 꺼내신다
먹는 것에는 별 관심 없이
설익은 고기 뒤적이느라 분주해진 나무젓가락
어느 마을의 그늘이었을 그녀가 큰손녀 막내딸
서울아들 챙기느라 가끔 삐걱거린다
봄이면 누구보다 먼저 버들피리 불었을 것이다
부지런히 가지 잎사귀 키워
여럿 품었을 것이다
배부른 아이들은 마당가 수국처럼 토닥거리고
떠들썩한 소주잔 틈에서 별 할말 없는 셋째는
얌전히 앉아있는 평온을 뚝뚝 분질러댄다 
푸른  종소리와 우아한 나뭇잎의 기억들
상위에 널브러져 때 기다리고 있다
기름을 빨아 누렇게 된 젓가락 들고
맞은편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어머니,
맨 윗가지인 나에게
무언가 일러주시고 싶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