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지면 발표詩

2008년 '유심' 겨울호에 발표-'로너르 여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9. 1. 20. 07:19

 

 인기검색어 : 백담사, 만해마을, 유심문학상 최종편집 : 2009.1.12 월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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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너르* 여인 / 황명강
황명강
[35호] 2008년 12월 15일 (월) 황명강 시인

꿈속이었어요 은색의 맨홀뚜껑이 마법 풀린 듯 느닷없이 찰랑거렸죠 수영을 못하는 내가 어떻게 의심 없이 뛰어들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에요 몇 번 허우적대다 서서히 가라앉는데, 숨 쉬기가 저쪽보다 편해지지 않겠어요 따스하고 짭짤한 양수의 기억 그것은 꽃물처럼 부드러웠죠 꿈속 알프스 빙벽에서도 찾지 못한 나를 이곳에선 만날 수 있을까 두근거리기까지 했어요 일년, 십년, 백년 지나고 다시 돌아간다면 어느 그리움이 날 기다려 줄까요 하지만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첫 키스의 쉼표처럼 내 완고함이 둥글어지고 있거든요 몸은 아래로 점점 내려가고 있어요 귓속 온전히 채워진 물의 고요가 생각을 집중시켜요 잠기면서 생각하죠 광활한 평원에 구덩일 파고 태연히 버텨온 그는 누구일까 분명하고도 어려운 이 물결의 질문은 무엇을 구하기 위함일까 어떤 이유로 난 여기 있을까 열흘째, 물이 깊어지고 있어요 5만 년은 얼마나 질긴 시간일까요 꿈속이니까 바닥에 닿지 않아도 걱정은 안돼요 열손가락의 지문이 침실의 창문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요 몸이 콩알처럼 작아졌어요 2만 년은 족히 지나갔나 봐요 가끔 귓바퀴에 걸리던 환몽의 굉음이 아득히 웅웅거려요 작아질수록 내 안은 밝아지고 있다니까요 아, 어쩌지요 잠이 깨려는지 휴대폰 알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5만의 난해한 문장 첫줄을 해독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돌아가야 하나요 내가 녹아서 그에게 스미고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매번 발목을 잡던 골목길, 넘을 수 없던 시의 벽이 허물허물 물결에 풀어지고 있군요 그렇군요 비 내리는 날이면 날궂이처럼 젖어 어디론가 스며들고 싶던 나, 로너르를 세웠고 로너르를 꿈꾸는 그의 일부였군요 소낙비 속을 걸으며 서두르지 않고 처연히 숨 고르던 어느 날들이 떠오르네요 로너르 여인,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면 내가 모르는 이름들까지 가슴에 담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도마뱀도 유다도 꽃처럼 사랑할 거라구요 나의 반대편 저 깊은 곳에 5만 년 견디고 있을, 또 다른 날 추억하면서 말이죠



*약 5만 년 전 인도 마하라스트러주 평야에 떨어진 별의 분화구. 호수바닥 수백 미터 아래에 운석이 있을 것으로 학자들이 추정함.


황명강 / 1958년 경주 출생. 2005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육군 3사관학교 출강. 경주신문 부사장.

 

 

 

 

*로너르 여인



황명강



꿈속이었어요 은색의 맨홀뚜껑이 마법 풀린 듯 느닷없이 찰랑거렸죠 수영을 못하는 내가 어떻게 의심 없이 뛰어들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에요 몇 번 허우적대다 서서히 가라앉는데, 숨 쉬기가 저쪽보다 편해지지 않겠어요 따스하고 짭짤한 양수의 기억 그것은 꽃물처럼 부드러웠죠 꿈속 알프스 빙벽에서도 찾지 못한 나를 이곳에선 만날 수 있을까 두근거리기까지 했어요 일년, 십년, 백년 지나고 다시 돌아간다면 어느 그리움이 날 기다려 줄까요 하지만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첫 키스의 쉼표처럼 내 완고함이 둥글어지고 있거든요 몸은 아래로 점점 내려가고 있어요 귓속 온전히 채워진 물의 고요가 생각을 집중시켜요 잠기면서 생각하죠 광활한 평원에 구덩일 파고 태연히 버텨온 그는 누구일까 분명하고도 어려운 이 물결의 질문은 무엇을 구하기 위함일까 어떤 이유로 난 여기 있을까 열흘 째, 물이 깊어지고 있어요 5만 년은 얼마나 질긴 시간일까요 꿈속이니까 바닥에 닿지 않아도 걱정은 안돼요 열손가락의 지문이 침실의 창문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요 몸이 콩알처럼 작아졌어요 2만 년은 족히 지나갔나 봐요 가끔 귓바퀴에 걸리던 환몽의 굉음이 아득히 웅웅거려요 작아질수록 내 안은 밝아지고 있다니까요 아, 어쩌지요 잠이 깨려는지 휴대폰 알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5만의 난해한 문장 첫줄을 해독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돌아가야 하나요 내가 녹아서 그에게 스미고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매번 발목을 잡던 골목길, 넘을 수 없던 시의 벽이 허물허물 물결에 풀어지고 있군요 그렇군요 비 내리는 날이면 날궂이처럼 젖어 어디론가 스며들고 싶던 나, 로너르를 세웠고 로너르를 꿈꾸는 그의 일부였군요 소낙비 속을 걸으며 서두르지 않고 처연히 숨 고르던 어느 날들이 떠오르네요 로너르 여인,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면 내가 모르는 이름들까지 가슴에 담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도마뱀도 유다도 꽃처럼 사랑할 거라구요 나의 반대편 저 깊은 곳에 5만 년 견디고 있을, 또 다른 날 추억하면서 말이죠


*약 5만 년 전 인도 마하라스트러주 평야에 떨어진 별의 분화구, 호수바닥 수백 미터 아래에 운석이 있을 것으로 학자들이 추정함

 

 

 

 

 

*유심은 만해 한용운 선생님께서 만든 문예지로 휴간 되었다가 백담사 주지 오현 스님에 의해 복간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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