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지면 발표詩

2006 경주문학 38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18. 10:33
2006년 겨울 경주문학 38호
 
 

 

 

 

 

 

 

 

 

 

황 명 강

 

 

 사슴 한 마리 영문도 모른 채 다리 떨면서 버티고 있다 기품 있는 생을 마감하려던 오른쪽 뿔이 흔들리는 왼쪽 뿔 건너다보며 비틀거렸다 아마존 정글 어슬렁거리다 태평양 건너 고비사막 내달려온 바람은 뿔에 닿기도 전에 허청허청 주저앉아버리고, 무언가를 기대하던 뿔은 모든 것 체념했는지 눈동자의 빗장을 굳게 닫아걸었다 그를 쓰러뜨린 사람들보다 이웃이었던 파리떼가 먼저 덤벼들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땅을 내려다보지 않았던 뿔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의 일생, 허공에서 잠시 울다가 땅으로 추락하는 중이었다 아주 천천히 뿔이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혈육처럼 몸 부비던 찔레꽃과 풀잎들은 돌아서서 가끔 흘끗거렸다 뿔이 사라진 능선 끝으로 노을마저 돌아가고 나면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입을 다물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어디에선가 하늘에 닿고 싶은 수많은 뿔들 산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