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지면 발표詩

비닐우의 外 1편 (2006년 서정시학 여름호 발표)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17. 01:42


 2006년 서정시학 여름호에 발표- '비닐우의', '못과 망치'

 

 

 

 

 

못과 망치



황 명 강



지나온 길 지워버리는 법

공구통 안에 쉬고 있는 그들은 알고 있다

한 토막씩 스쳐간 자막의 발자국들

다시 몸 덮쳐와 스멀거려도

수십 배 부풀린 목소리로 담금질 하다보면

백지처럼 모든 것 정지하는 순간이 온다

마지막 떨림으로 지워지는 길


어둠의 이불 덮어 쓴 공구통 안에

못과 망치 누워 있다

체온으로는 데워지지 않는 가슴팍 시려워

서로 눈치 살피며 돌아눕기도 한다

나란히 누워 있어도 다른 꿈길로 접어드는 그들

무엇이 두려운 걸까


단 한번 뜨거운 포옹 뒤로 한 채

침묵의 길 향해 걸어 들어간 못

보이지 않는 곳으로만 흘러가서 이어지는 또 다른 길

불빛들 올망졸망 모여드는 저녁에도

누군가는 여행가방을 챙기고

언덕 위의 소나무는 한 뼘 더 하늘에 닿기 위해

품었던 솔방울 땅위에 내어 던진다

지나온 길 지우고 또 지워내는 일

반복된 일상을 뒤로 밀어내는 것이다

 

 

 

 

 

비닐우의 


             

황 명 강



雨衣를 걸치자 온몸이 간질간질 했다

손등에서 배꼽, 아랫도리까지

소름끼칠 듯 돋아난 비늘이 번들거렸다

앞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가 서투르게

균형을 잡는 순간

두둥실 수면 위로 솟아오른 낯선 세상 하나


빗방울은 달콤했고

가끔 대열 빠져나온 바람이

툭툭 물주름 던졌지만

눈동자는 더 먼 쪽으로 출렁거렸다 

오래 기다려준 동백꽃

쭉쭉 뻗은 삼나무의 허벅지

지느러미는 과거와 현재 사이를 미끈거렸다 

 

비늘은 점점 가지런해졌다

어둠 버티던 가시들 볼우물처럼 휘어져

보글보글 웃음소릴 만들어내고 

눈치껏 길 엮어내는 부레도 밉지 않았다


서늘해진 시간의 껍질과 플랑크톤과

물안개들이 쌓여 불룩한 배때기

멀미나도록 뒤집기도 하면서

눌러두었던 눈물 시원스레 토해내기도 하면서

세상의 가장 행복했던 물고기,

지금도 동백숲 가로질러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