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학' 등단 작품 5편
몽돌
황 명 강
어딘가로부터 떠나올 수 있었기에
그들은 바다를 얻었을 것이다
무어라 주절거리는 주전리 바닷가 몽돌
때마침 혼자 서성대던 슬리퍼 한 짝
감싸 안으며 토닥토닥 다독이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부터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가 아니고
몽돌을 닮아갈 것이다
너그러워지는 달빛 기다려
나는 맨발로 몽돌밭을 걸었다
그들 목소리 닿을 때마다
딱딱한 곳만 가려 다녔는지
아픔 참으려고 바다 쪽을 바라다보았다
크고 작은 욕망들이
발목과 무릎과 어깨위에 떨어진
초저녁별의 뼈마디까지 물어뜯었다
해안선을 따라 세상은 조금씩 둥글어졌다
아침이슬
황 명 강
절정의 순간에 죽을 수 있어
행복하겠다 그녀
풀잎은
연두빛 세상에 대해서만 흥얼거리고
제비꽃은 보랏빛 하늘 올려다 보며
작은 날개 파닥이고 있지만
몸 전체가 눈동자인 그녀,
한 세상 가슴에 품은 채
입 다물고 앉아 해 뜰 때 기다린다
겨울 강
황 명 강
강은 부글거리는 속 견디며 엎드려 있다
오리배는 길 저쪽 올려다보면서
강의 비위 맞추느라 꼬리를 흔든다
톱날같은 나뭇가지가
혼자 걷고 있는 내 발목을 잡는다
엎드릴 곳 없어 강둑 더듬던
바람은 고단함 견디려고
포플러나무 꼭대기까지 기어오른다
나는 마른 가지 끝에 매달려
몇 시간인가 헝겊처럼 흔들렸다
아마 지금까지 흩날려온 길에서
가장 추웠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실수로 뛰어내린 돌멩이도 강 저편 기슭으로
미끄러져 갔다
겨울을 이 강에 몽땅 옮겨놓은
내 잘못이 크다
군불을 지피다
황 명 강
무슨 인연으로 얽혀든 것일까
길 끊어진 외딴집에서
처음 만난 나무의 다비식을 치렀다
때 기다리던 나무 등걸
다음 생을 꿈꾸는 살점들
털어내고 있었다
나이테 사이 눌려있던 햇볕과 바람은
풀려난 기쁨 감추지 못하고
둥실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들은 손에 잡히는 모든 것 동원해
한 송이 두 송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던 것
깊숙한 아궁이는 수없이 많은 꽃송이를
낳고 또 낳았다
전생의 그 무엇이었음을
꽃송이들 중얼거리며 일러주고 있었다
새벽 두 시 기차소리
황 명 강
쓸만한 것들 남겨두고
걷도는 마음 거두어 밀고 가는
새벽 두 시 기차소리
부러진 콤파스처럼 절뚝이는 내 詩의 나뭇가지
꼬리 감춘 기차소리에 걸려 넘어진 채
깊은 밤
작약 능소화 봉숭아 해바라기 천인국
배경처럼 놓여진 생을
주인공인 양 꼿꼿이 목 세우고 있다
어둠 소스라치게 바라보며
웃을 줄 몰라 사랑도 못하는 나, 바위처럼
미끈하게 다듬어진 벽 바라보고 있다
깊어가는 詩의 숲 가로질러
기차는 떠나갔다
튕겨져 상처 줍는 자갈돌처럼
레일 깔리지 않은 어느 곳에도 길은 없다
흔들리는 길 위에
수많은 내가 바퀴 굴리며 달려간다
예심 심사 <장석원시인. 신해욱시인>
본심 심사 <오세영시인. 최동호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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