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발표칼럼 및 산문

1월 8일 팔면경 - 곶감(2)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10. 1. 10. 22:07

2010년 0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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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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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돌담을 돌아들면 낯익은 골목은 어느새 곶감 생각으로 말랑말랑해진다. 눈짐작만으로도 발그레한 속살이 달콤할 것이라는 걸 감지하게 하는 곶감이 떠오른 탓이다.

지난번 방문에서도 홀로 황토방을 지키던 나이 드신 도공은 잠시 이야기를 끊고는 쌀로 만들었다는 엿과 곶감을 내오셨다.

추운 겨울이라 도자기 빚는 작업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정립한 철학을 원고지에 옮기다가는 찬바람과 함께 찾아온 방문객을 반가이 맞아주는 것이다. 불국사 부근에 터를 잡은 지 30년이 넘는 선생의 요는 우리의 전통 가마를 고집해서 장작으로 불을 지펴 도자기를 굽는다.

떫은 감이 껍질을 벗고서 바람과 햇살을 통해 달디 단 곶감으로 새 이름을 얻듯이, 이곳에서는 지천에 깔려있는 흙이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선생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사물을 평가하는 이들에게, 도자기와 다도를 통해 우주의 섭리와 본성으로 세계를 보아야 하는 원칙을 펼쳐 보이고 있다.

낮으막한 황토방에 앉아 끊임없이 국어사전을 펼치며 원고를 쓰고 책을 읽는 84세의 도공을 보면 어느새 초인(超人)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병원이나 드나들며 병치레하는 그 연세의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20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생의 시간들은 조금도 물러터지거나 떫은맛 없이 달고 쫀득한 곶감처럼 발그레하다.

몇 시간의 대화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접시에 남은 곶감 두 개를 가져가라고 하신다. 그 정이 따스해서 머잖아 다시 찾게 되리라. 우리가 길을 가다가 부딪치는 자동차 경적소리나 불편한 장소에서의 쓴 소리 까지도 스스로를 단련하는 곶감의 바람이라고 생각해보자. 휘파람 불면서 경인년을 걷게 될 것이다.

/소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