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향을 빛낸 출향인을 찾아서
거울처럼 맑은 우리시대 법조인 황영목 대구고등법원 법원장 |
|
2009년 08월 06일(목) 16:31 901호 [경주신문]  |
|
|

|
|
↑↑ 집무실에서, 황영목 대구고등법 법원장 |
ⓒ 경주신문 |
|
며칠 전에 남산 금오봉을 올랐다. 소나무와 산새소리를 적시는 개울물에 환호하며 오른 산정에서 수많은 불상과 숲을 보듬어 안은 골짜기들을 보았다. 가장 높은 곳, 그 자리에서는 많은 것들을 한눈에 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 또한 고스란히 읽히게 된다.
그런 연유였을까. 집무실에서 마주한 황영목 대구고등법원장의 모습은 한 점 티 없는 거울 같은 느낌이었다. 스스로를 내보이면서 상대의 모습 또한 온전히 담아버리는 거울 앞에서는 어떤 무게도 내려놓아야 할 일이었다.
더위에 늘어진 초록의 가로수를 건너 도착한 대구고등법원장실은 매우 넓고 정갈했다. 법률서가 진열된 서고와 책상, 창이 열려있는 컴퓨터, ‘런던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책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여름에도 선풍기만 사용하는데 고향에서 온 방문객을 위해 냉방을 시작했다며 웃으시는 황영목 대구고등법원장. 그분에 대한 무거운 선입견을 내려둔다면 따스하고 편안한 자연인의 모습이었다.
대구고등법원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전역을 관할하는 법원으로, 대구지방법원과 그 산하 지원의 재판에 대한 항소, 항고사건과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재정신청사건 등을 심판하는 곳이라고 한다. 어쩌면 일상의 무거움을 즐겁게 안고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겸손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법원 안팎의 존경을 받고 있는 황영목 법원장은 1951년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에서 태어났다. 내남초등학교, 경주중학교, 경북대학교사대부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으며 1976년 사법고시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는 사법고시가 60명만 뽑을 때여서 매우 어려운 관문이었으며 황영목 법원장은 성품에 맞는 판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면서 1996년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장, 2003년 대구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2005년 2월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2005년 11월 대구지방법원장을 거쳐 2009년 2월 대구고등법원장으로 부임했다.
대구고등법원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법원 견학, 학생들의 모의재판 프로그램 등의 활성화를 통해 법치주의에 대한 이해와 준법정신을 함양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대구지법원장 재임 시 국민이 직접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등 황영목 법원장은 주어진 일정에 최선을 다하는, 연구하고 실천하는 법조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나 가정에서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그들 스스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황법원장 곁에는 인간적인 끈으로 이어진 많은 지인들이 있다. 12년 전부터 건강을 위해 시작한 산행에서 소나무와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고 이젠 개인 화첩을 낼 만큼 프로 사진작가 못지않다는 주변의 전언인데, 황영목 법원장은 모범공무원에게 수십 차례 직접 촬영한 야생화 사진을 액자까지 제작해 전달해왔다.
대구판례연구회 회장으로 지역의 법률 문화를 이끌고 있는 황법원장은 대구지법과 대구고법 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할 당시 도산한 지역기업의 회생을 여러모로 도왔다. “경주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경험한 것들이 판사로서의 길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판사는 사회통념 즉 전통과 가치에 의한 일반적이고도 평범한 상식을 다루는 사람이므로 건전한 사고를 통해 정당한 판결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나의 모든 밑바탕인 고향을 사랑합니다.”라며 유년의 추억담을 잠시 들려주신다.
일이나 삶에 있어 근원을 풀어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가족으로는 고향 내남에 있는 모친과 불문학을 전공한 부인 진영석씨. 독일에서 금속공예를 공부하고 있는 장남 명섭씨, 출가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룬 장녀 명혜씨가 있다. |
|
황명강 기자 violetdy@naver.com “” - Copyrights ⓒ경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경주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경주신문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