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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광약품주식회사 황병윤이사 -2005년 2월-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3. 7. 19:50

 

 

 

부광약품주식회사 황병윤이사

 

 

 



올해는 눈이 흔했던 겨울로 기억될 만큼 많은 눈이 내렸다. 얼마 전 경주에는 28년 만에 내린 폭설로 덮였었는데 그날 경주에 있었던 행운으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오봉산을 향해 오르던 산길도 자신의 갈 길만을 고집하던 국도변 좌우측의 가로수도 하얗게 쌓인 눈 아래 하나가 되어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려내려고 몸부림치는 옳고 그름이나 미움과 원망같은 것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시간낭비에 불과한지를 조용히 가르쳐준 하루였다. 그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렇게 하나인 채였다.

 

 

부광약품주식회사 황병윤이사를 만난자리. “삶의 무게비중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라는 무모한 질문을 던졌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내가 열심히 살아온 것은 자신의 편안함을 취하기 위함보다는 바뀌는 세상에 그 기준을 맞춤으로써 그들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조금이라도 많은 행복을 나누며 살아간다.”

제 것 챙기기에 급급한 세상에서 참으로 듣고 싶었던 답이었음을 즐겁게 전하면서 부광약품주식회사에서 많은 신화를 남긴 황병윤이사의 다음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황병윤이사는 1955년 경주시 안강읍 검단리(사방)에서 태어나 사방초등학교, 경주중고등학교, 서울 국민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어린시절 영특하여 집안 어른들과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던 것이 때로는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꼿꼿한 마음한번 놓치지 않고 살아온 것은 그 영향이 컸음을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스승의 회갑연을 챙겨드리고 오늘날까지 모실만큼 사람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황병윤이사는 사소한 전화 한 통화에까지 소홀함이 없었다.

 


국내 정세가 어수선하던 1980년 부광약품주식회사에 공채로 입사하여 현재까지 25년. 1981년 대구지점으로 발령을 받아 영업활동부터 시작했는데 수많은 실적을 남기고 1999년 부광약품대구지점장으로 승진했으며 2005년 1월 드디어 이사로 발령을 받아 주위의 부러움과 축하를 받으며 4월 서울 입성을 앞두고 있다.

 


입사 당시 실적이 미비했던 대구지점을 전국매출대비 14.6%까지 끌어올리는데 견인차역할을 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보 창간호에 성공사례가 발표되었고 사내 진급시험때는(영어, 경영학논문) 약대출신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1등을 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지만 황병윤이사는 끝내 영업의 길을 택했다.

 

 

또한 영업활동을 하는 인물일수록 기획, 관리 뿐만아니라 학술적인 면에서도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영업은 테크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대의 가치기준이 바뀌어가고 있는 만큼 성공이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문화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되는 일 아니겠는가.


황병윤이사는 초등학교동창회는 물론이고 경주중고등학교 동기회에서도 회장을 맡고 있다. 지금도 ‘집’이라면 경주에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명명된다는 황병윤이사의 고향사랑은 언젠가는 작은 것이라도 고향분들과 나누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으로 승화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경주시 안강읍 사방에는 부친 황원조선생과 모친 손태임여사가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 고향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음을 덧붙인다.

 


“내가 고생을 하면 누군가는 편할 것이고 내가 손해를 보면 남이 이익을 본다.”는 마음으로 세상을 헤쳐가고 있는 황병윤이사를 만나면서 남을 사랑함으로써 나의 성공에 이를 수 있는 삶의 철학을 배우게 되었다. 대구 동일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부인 심혜숙씨의 내조를 감사히 여기는 황병윤이사. 장녀 지영씨는 영남대학교에서 영어교육학을 장남 정필씨는 경희대학교 법대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개인의 삶과 더불어 절대다수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황병윤이사의 미래에 행운이 함께 하시길 빌면서 고향에서는 승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