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구미부시장
'polis 21c park'라고 명명되는 구미시청 후문의 공원에는 계단식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어 더위에 대항이라도 하듯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싱그러운 열매를 매달고서 제법 일가를 이루고 서있는 감나무들의 공원길을 지나 청사 3층 부시장실을 찾았을 때는 결재서류를 든 직원 여러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도시를 표방하며 전국 수출의 11%, 무역수지 흑자 전국 54%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구미시인 만큼 김규식부시장의 하루 일정이 얼마나 바쁠지는 미루어 짐작이 갔다. 현재 인구는 38만 여명이지만 구미 국가공업단지 1ㆍ2ㆍ3단지에 이어 조성 중인 4단지가 완공되는 2006년에는 50만 인구에 생산 100조 원, 수출 350억 불을 내다보고 있으므로 세계와 호흡을 같이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모든 관계자들이 하나로 뭉쳐있는 듯 구미 시청사는 활기가 넘쳤다.
오랫동안 중앙부처에서 쌓아온 실력과 빈틈없는 업무능력으로 시장이하 여러 임직원과 함께 구미시를 이끌고 있는 김규식부시장은 경주가 배출한 자랑스러운 인물이다.
1948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에서 태어나 모량초등학교, 경주중학교, 대구 사대부속고등학교, 영남대학교를 졸업한 김규식부시장은 군복무후인 1974년 7급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김천시 금릉군을 초임으로 공직생활은 시작되었고 도청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으나 1978년 내무부로 입성하여 2003년 2월 경상북도 공무원교육원장, 2003년 7월 구미시 부시장으로 부임하기까지 내무부 홍보과장, 통합된 행자부 주민과장, 감사과장, 재경부산하 조세연구원(부이사관 승진 이후),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행자부 주민과장으로 근무할 때에 주민등록증 갱신이 이루어졌는데 어려운 기획과 일련의 사건들이 많아서 고생한 일과 1995년 우리나라 최초로 4대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룰 때는 선거법통합 등의 일로 상당한 폭무에 시달렸지만 최선을 다한 날들이 돌아보면 보람 있었다고 전하신다.
현재 구미시청 공무원들은 산하 직원들을 일일이 보살피고 독려하는 김규식부시장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주말에까지 돌아볼 업무가 산재하다보니 서울의 집에는 다녀올 엄두를 못낸다고.
고향 쪽에 와서 근무를 하다 보니 고향 친구들을 가끔 만나는 일이며 고향인 경주 모량에 자주 들리는 것이 오랜만에 맛보는 또 다른 행복함이라고 말씀하시는 김규식부시장은 당시 교장이셨던 청마선생님이 들려주시던 싯귀절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고 했다.
오랜 서울생활에서도 잊혀지지 않던 어릴 적 통학길을 더듬으며 고향 경주의 발전을 기원한다는 말씀 잊지 않으시는 김규식부시장. 가족으로는 경주여고 출신의 부인 이수복씨, 서울에서 교편생활로 후학들을 가르치다 2,000년에 퇴임하였으며 장남 충지씨는 군복무후 일류 기업체에 근무 중이고 장녀 지현씨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모두들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누군가는 깨어 이 사회를 껴안고 간다. 한 시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김규식부시장님께 감사함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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