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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산대학교 정구점교수 2004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22. 00:02
 

 부산 영산대학교 정구점교수

 

 

 

 

부산역에 내리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 광장에 밀려든 사람들은 어디론가 황망히 사라져가고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나 그렇게 역사는 시작되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길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우리는 그 길을 걸어야 할 것인가. 의식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용기와 실행이 따라야 한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빗길을 걱정하여 마중 나와 준 정구점교수를 만났다. 영산대학교 호텔관광학부 학부장과 조리학부 학부장, 경영대학원 교학부장을 맡고 있는 까닭에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보였지만 정구점교수의 상대를 향한 배려를 느끼며 이미 전국에서 신화적인 인물로 통하는 분이었기에 즐거운 탐색의 기회를 누리기로 했다.


정구점교수는 1954년 경주시 노서동에서 태어나 부산 성지초등학교, 경주중학교, 경주고등학교, 미국 UNLV(네바다주립대 라스베가스 캠퍼스-호텔경영학분야로는 세계최고의 학교)를 졸업했다. 정교수는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관광사업에 대한 관심과 미래를 내다보는 높은 인식으로 이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다.

 

당시 경주에는 좋은 여건으로 근무할 호텔이 많았지만 정교수는 굳이 서울행을 감행했다. 우리나라의 최고, 나아가서는 세계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더 넓은 곳을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당시 최특급호텔인 서울의 신라호텔에서는 시골에서 올라온 정교수를 환영해주지는 않았다.

 

어렵고 고단한 일을 도맡아하며 1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15시간씩 근무를 했다. 원하는 목표를 가기 위한 투쟁의 시작이었다고나 할까. 사투리를 버리고 영어공부를 최우선으로 꼽았으며 마음처럼 외모를 다듬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78년부터 87년까지 신라호텔에 입사한 뒤 9년 동안 객실지배인과 프론트지배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은 신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 판촉부장과 객실부장을 지내며 안정된 자리에 있던 38세 때, 미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가족이 있었고 모든 것이 보장된 현실을 내던지고 유학길에 오른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무모하게 보였을 것이나 정구점교수는 자신의 선택을 믿었다고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전략이 필요하며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정교수는 강조했다. 시간과 돈과 건강,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던져 노력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1994년에는 총지배인 공인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1995년 입국하여 삼성에버랜드호텔사업담당부장, 조리학교 교장(ECA), 1999년 서울 특급호텔인 타워호텔 총지배인에 이어 2000년 부터 부산의 영산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기르고 있다.

 

학교호텔(B&B호텔) 상임운영위원, RIS(지역혁신사업)사업단장, 경상남도 관광정책자문위원, 해운대구 발전위원등을 지내며 지역발전에 참여하고 있는데 정구점교수의 관심분야는 관광개발과 식문화 발전 등이다. 현재까지 자신을 위해서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대중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정구점교수의 정신적 지주는 ‘멸사봉공의 정신’이라고 덧붙인다.

 

고향인 경주가 문화관광도시인 만큼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으로 고향을 위해서도 봉사하고 싶다는 정교수는 아주 작은 꿈의 씨앗을 싹을 틔우고 튼튼한 나무를 만든 자랑스러운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앞으로의 건승을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