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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다강산방'김재호사장 / 2006년 6월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20. 23:56

 

'청도 다강산방'김재호사장

 

 

 

 

 

마음이 원하는대로 떠나고 싶은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뭉기적거리며 하루해를 지운다.

하물며 삶의 터전을 마음 가는 쪽으로 옮기는 일이라면, 잘 나가는 직장인의 경우에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신선처럼 살기를 원하나 문명에 휩쓸려 온 현대인들에게는 던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에 전원의 삶은 먼 훗날의 숙제로 남겨둔 채

살아가고 있다. 봄이 기우는 해질녘, 청도군 각북면의 작은 계곡을 따라 물소리에 묻히고 숲의 한자락이 되어버린 사람이 있다기에 찾아 나셨다.

 

대구에서 가창댐을 지나 헐티재를 넘는 동안 푸른 숲에 마음을 뺏기지 않으려고 카오디오 볼륨을 높인 채 달리다 보니 우측에 '다강산방'이란 작은 간판이 차를 세웠다. 온몸을 씻어내릴 듯한 대숲 소로를 5분쯤 걸어서야 계곡 물소리가 먼저 반기는 산방입구에 도착했다.

 

신부님,스님,예술가는 물론이고 잠시나마 귀를 씻고자 하는 이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는 이곳은 김재호사장이 문을 활짝 열어 놓았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직감으로 느끼며 함초롬히 늘어선 야생초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의 임원에서 적막한 산중의 나무 한 그루처럼 옮겨 살기 시작한 것이 어언 8년이 흘렀다는 김재호사장. 얼마간의 내력을 듣다보니 경주와는 몇 겁의 인연을 가진 분이 아닌가 싶었다.

 

군위에서 출생했으나 경주에 근무하신 부친을 따라 안강에 정착하게 되면서 안강초등학교, 경주중고를 졸업했고 부산동아대학교를 나온 김재호 사장은 여태 아름다운 경주사람으로 살아간다.

그 이면에는 경주를 사랑했던 부친의 마음을 잊을 수 없는 까닭이 있기도 하다.

 

김재호사장의 부친 '김무환'선생은 4.19이후에 월성군수를 지내셨고 경주군수에 이어 제4대 경주시장을 지내신 분이었다.

병산서원 원장을 지낸 할아버지 때부터 500석지기 부농이었지만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고 대의를 위한 삶을 �으셨던 부친으로 인해

김재호사장은 금전적으로 어려운 청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고생을 많이 했던 까닭에 안타까운 기억도 있지만 부인과 자주 경주를 찾는다는  김재호사장의 가슴에는 애증과 사랑이 공존한다고 해야할까. "각박한 사회라 너나 없이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김사장은 어느덧 역사 속의 부친을 닮아가고 있는 듯 했다.

 

경주의 문인들과 대구에 살고 있는 학창시절의 동무들 발길이 자주 머무는 다강산방은 대동골이라 불리는 계곡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다.

여름날 소나기라도 내리면 계곡의 물보라가 손에 잡힐 듯 하다고 전해진다.

 

연보랏빛 향을 떨구는 마당의 오동나무를 비롯해 산과 실내를 이어주는 야생초가 700여종 전시되어 있고 천연염색과 규방공예를 겸한 부인 기종희씨의 인테리어는 프로로 인정받고 있다.

벽에는 산방을 읊은 시와 전문작가의 야생화사진 등, 이곳을 아끼는 이들의 마음이 따스하게 남겨져 눈길을 끈다.

 

"삶이라는 게 운명의 순응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에 동화된 삶이야말로 순응이 아니겠는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다음 세대를 이어갈 교육문제를 자주 떠올려보는데 잘못 주입된 교육은 인성을 좋은 쪽으로 유도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길러내고 있어 걱정이 된다"는김재호사장을 통해 외진 숲속에 떨어져 있는 나무 한그루도 이 세상의 일부분임을 상기시킨다.

 

"원래 욕심이 없었으니 계획이 없고 누군가가 오면 맞아주고 떠나면 손 흔들어 줄 뿐"이라는 김재호사장을 뒤로하고 다강산방을 나왔다.

차  한잔을 기약하지 않아도 경주 어느 거리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는 예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