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경상북도 건설도시국장편
11월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거리의 나무들은 절반쯤 옷을 벗었고 누구나 한번쯤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샹숑의 흐물거림에 잠기고 싶은 때이기도 하다.
늘 되풀이되는 계절이 바뀌는데도 수많은 것들은 몸살을 앓는다. 하물며 사람이 살아가는 터를 다듬고 가꾸는 일에 있어서는 성취감도 크겠지만 얼마나 많은 진통을 만날 것인지. 무심코 스쳐가던 다리 위에서 그 다리와의 만남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우리는 가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정호 경상북도 건설도시국장을 만나기 위해서 대구시 북구에 위치한 경상북도 도청을 찾았다. 가끔 고향과 관련된 모임에서 안면이 있었지만 분주한 업무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랑스러움과 아울러 평범하지 않은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넓은 포옹력과 번뜩이는 판단력 그리고 실천력이 함께 움직여야하는 중요한 위치이기에 표정은 잔잔한 호수의 표면처럼 무언가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김정호국장은 1949년 포항에서 출생. 유년시절부터는 경주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경주공업고등학교를 거쳐 경일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다.
1967년 경주시(당시 월성군)에서 공직생활을 시작으로 1988년까지 거의 20여 년을 경주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현재 경주시 노서동 171-1번지에는 언젠가 돌아올 주인을 기다리는 집이 있다고 한다.
1985년 경주시 도시과장, 1988년 구미시 수도과장 도시과장, 1992년 포항시 도시과장 건설과장, 1995년 경상북도 도시개발과 구획정리계장, 1995년 경주시 건설도시국장, 1999년 경상북도 치수재난관리과장 치수방재과장, 2003년 경상북도 건설도시국장에 이르고 있다. 경주시에 근무할 당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보문단지 조성)에 참여하여 경주시 도시계획과 개발사업에 일조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 경주시 건설도시국장 시절에는 유난히 심했던 가뭄극복을 위해 형산강의 물을 끌어다가 보문단지에 공급하는 등 어려운 일일수록 발벗고 나서는 공직자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김정호국장의 업무라면 어렵지 않은 일은 없다.
새로운 도시를 설계하고 낙후된 지역을 끌어올리고 농어촌까지 돌아보아야 하는 헤아릴 수 없는 난제들 앞에 늘 서있는 것이다. 특히 주요업적으로 꼽을 만한 일은 98년부터 2003년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대형 태풍이 있었는데 재해대책과 복구에 만전을 기하여 그 피해를 최소화한 점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경상북도 도시건설국장이라는 직분만큼 의지를 다지고 있는 김정호국장. 앞으로의 계획 또한 우리 모두의 삶에 직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낙후된 동해안과 북부지역개발의 추진, 경부고속철도 경주, 김천역사에 따른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대구지하철 경북지역 연장건설도 추진중이라고 한다. 산업단지 조성, 농어촌 주택개량, 지적도면 전산화 등에 최선을 다하여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겠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활동적인 부인 한선자씨와의 사이에 3남을 두었는데, 장남 성우씨는 SK텔레콤 서울본사, 차남 재홍씨는 LG필립스에 재직중이며 막내 기수씨는 대학교 재학중이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언젠가는 역사의 길을 따라서 걷게 되겠지만 김정호국장이 남긴 발자취들은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허락한다면 20년이 넘도록 젊은 날의 땀을 뿌려놓고 온 경주로 돌아가 조금이라도 봉사하며 살고싶다는 마무리 말을 들으며 김정호국장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많은 기대와 함께 건승과 가내의 평온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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