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와 사랑으로 걸어온 길, 부산 태화산업사 김문수회장 (진실한 로타리안)
허공을 가르며 까마득히 날아오르던 부메랑은 어디쯤에선가 방향을 바꾸어 던진 지점으로 분명히 되돌아온다. 움츠렸던 나뭇가지, 깊이패인 옹이에도 작년처럼 물이 오르더니 어린 잎새들은 세상을 향해 힘차게 손을 내젓고 있다. 거리를 휩쓸던 낙엽의 기억을 누르고 저토록 거만한 캔버스에 마음가는 대로 붓을 휘두르고 있는 대자연에 부러움을 느끼며, 돌아올 그 무엇에 대한 것들은 생각조차 않은 채 사랑의 부메랑을 던지면서 살아온 자랑스런 출향인을 소개하기로 한다.
부산에서 삼오산업사와 태화산업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문수회장. 부산의 경주중고등학교 동창회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신라동우회 회장,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동문회장, 부산대학교 총동창회부회장, 부산 연제 로타리클럽회장을 맡아 다년간 봉사해왔다. 특히 1981년 세계적인 봉사단체 로타리클럽의 하나인 금정로타리클럽에 입회하여 1985년에는 부산 연제로타리클럽을 창립하기도 했다.
올해로 만 23년째 활동하고 있으며 주 1회 열리고 있는 회의에 23년 간 개참하는 열정으로 일관해왔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봉사가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불우이웃을 도왔고 장학사업을 해 왔으며 멀리 일본에 있는 사세고오 시까시 로타리클럽과의 자매결연을 통한 끊임없는 활동으로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사무실을 에워싼 수십 여 개에 달하는 감사패가 아니더라도 김문수회장께서 한국 로타리클럽 총재에 입후보한 경력이 지난 세월을 일러준다. 그러나 알려져 있는 어떤 사실보다도 그분을 만나게 되면 내면에 고요히 흐르는 인품을 누구나 느끼게 될 것이다.
염료를 취급하는 삼오산업사와 진공포장회사인 태화산업사. 두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꾸준하게 봉사의 길을 걸어온 김문수회장. 1936년 경주시 황남동에서 6남매 맏이로 태어나 월성초등학교, 경주중고등학교, 부산대학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활달한 성품으로 운동을 좋아했던 김문수회장은 학창시절 규율부장을 지냈으며 인기가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한겨울 안압지에서 지치도록 타던 스케이트에 대한 추억과 친구들과 하나가 되어 토끼몰이 하던 수도산을 잊을 수 없다고 하시며 부산에서의 객지생활이 외롭지 않았음도 늘 고향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향에 대한 애틋함을 내보이셨다.
섬유공학을 전공했던 김문수회장은 1962년 국내 유수한 무역회사에 입사하여 16년간의 경험을 쌓았고 1979년 '삼오산업사'를 설립한다. 세계 각처에서 염료를 수입하여 전국의 염색공장에 납품하는 일로서 우리나라 섬유업계에 많은 공헌을 해왔으며 80년대 후반 들어 진공포장회사인 '태화산업사'를 설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신체의 건강과 비례해 늘 정신의 건강을 우위에 두었고 개인의 영달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했던 김문수회장, 그분의 뒤에는 늘 한편이 되어 주신 어머니 정분희 여사가 계신다. 또한 7남매 맏이의 역할과 함께 모든 활동을 뒷바라지 해온 부인 최희식씨의 공도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며 훌륭하게 성장한 2남 1녀. 장녀 남희씨는 부산대학교를 졸업한 뒤 출가하여 반송에서 '서울정형외과'를 개원한 남편을 내조하고 있다. 장남 재훈씨는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과를 졸업, 일산에서 병원을 개원하였고 차남 규태씨는 부경대학교 전산공학과를 졸업하고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김회장께서 걸어온 길에는 간과할 수 없는 아름다운 미담이 수없이 많으나 밝히기를 원하지 않으시니 흘러가는 세월의 강 위에 가만히 던져둘 수밖에 없는 일이다. 김문수회장은 고향 경주가 너무 좋아서 율동에 농장을 마련하였고 경주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찾는다. 100회 이상의 산행을 자랑하는 부산 수봉산우회의 창립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는 후문이고 보면, 우리 모두 오랫동안 걸어와서 지워졌을 거라고 여긴 발자국들이 자신을 향해 어김없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김문수회장께서 그동안 날려보낸 부메랑들이 더 커다란 사랑의 회오리를 만들어 돌아올 날을 기대하면서 건강과 가내의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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