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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산모방 김신용회장 / 2004년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20. 18:49


신용으로 업계 최고를 달리는 남산모방 김신용회장

 

 


 


남산에 올라보면 산 전체에 늘려있는 불상과 불상이 새겨진 바위들을 우리는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옛날에는 아주 평범한 돌산이었을 그곳이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열망으로 새롭게 태어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너무도 큰 의미가 되고 있다. 돌에서 탑이 탄생하고 나무에서 장승이 걸어나오듯 평범한 출발이었지만 지금은 우뚝 서서 주위의 귀감이 되고있는 부산의 김신용회장(남산모방, 신아섬유)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김신용회장이 운영하고 있는 남산모방과 신아섬유의 본사와 공장은 경남 양산시에 소재하고 있으며 서울 종로에 서울사무소가 있다. 주 생산품목은 모직물 양복지 등인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모든 생산 시스템은 자동화가 되어있다고 한다. 회사의 규모 면에서나 제품의 인지도 면에서나 우리나라 어느 회사에도 뒤지지 않는 최고를 인정받고 있는데, 이는 김신용회장께서 기업가의 철칙으로 여기는 '신용'를 우선으로 살아오신 까닭이기도 하다.

 

 

맨손으로 출발하여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존경받는 김신용회장은 "사업가는 기다릴 줄 알아야 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익 되게 하는 사업을 해야된다."는 뜻깊은 말씀과 "결코 중국시장에 우리의 섬유산업을 넘겨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는 의지를 남기셨다.


김신용회장은 1941년 경주시 탑정동 도초리에서 태어났다. 율동초등학교, 계림중학교, 경주공업고등학교 토목과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와 부산대학교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공부했으며 어떤 일에 임해서도 적극적이라고 하신다. 1960년대 어려웠던 시절. 고향을 떠나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부산에서 터전을 잡게 되었다. 그 후 경험을 밑천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오늘의 남산모방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6형제의 맏이로서 혼자 잘사는 것보다는 동생들이 함께 잘 살아야 부모께 효도하는 길이라는 깊은 생각으로 고향에 남은 형제들에게는 2만여 평에 달하는 농토를 구입해주셨고 다른 형제들은 부산에서 같은 업종의 일로 성공하게 하여 화목하게 잘 지낸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위하여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현실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점검해보게 하는 강렬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었다.

 

 

모시고 있는 노모 홍무연여사의 목욕을 직접 시켜드릴 만큼 효자로 알려진 김신용회장. 부인 정복련씨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셨는데 두 딸 현주, 현숙씨는 출가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고 장남 석환씨는 남산모방의 전무이사로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으며 차남 창환씨는 학업에 정진 중이다.


김신용회장은 현재 부산의 경주공업고등학교 총동창회회장을 맡고 있는데 기업가로서 바쁜 와중에도 누구보다 열정적이며 동창회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위에서 전해왔다. 경기침체로 인해 동창회에도 그 여파가 있었는데 가라앉은 분위기를 살리고 새로운 동창들을 찾아내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싣기도 하고 100회 째 산행을 맞은 '서라벌산악회'(매월 4째주 일요일 산행)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산행이 끝난 후 뒤풀이 때에는 꼭 사비로 식사나 차를 제공하는 열의를 보이며 산악회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신 결과 지금은 매월 대형 관광버스 한 대로 모자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신용회장은 그동안 열심히 도와준 사무국장이하 임원들의 노력의 힘이라고 그 공을 돌렸다. 또한 앞으로 각 기별 이사들의 모임인 월례회를 통해 많은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씀과 아울러 학교나 어떤 경계를 초월한 경주인의 모임을 꼭 결성하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이렇게 서로 사랑과 믿음으로 모교와 고향을 사랑하는 출향인들은 항상 마음의 시선을 경주를 향하고 있다. 어느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라면 그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고향을 그리워함도 변하지 않으리라. 김신용회장께서 신화처럼 이루어놓은 남산모방의 무궁한 발전과 경주공업고등학교 부산 총동창회의 화려한 내일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