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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측량학회 회장 박운용교수 / 2003년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20. 14:26
한국측향학회회장 박운용교수
 
 
 

 




장미가 무더기 지어 행인을 유혹하는 유월이다. 도심의 잔디밭, 떼를 쓰듯 밀고 올라오는 크로바를 어느 날인가 가만히 앉아서 들여다보게 되었다. 마주보는 눈망울이 하나같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꽃을 뚝뚝 따서 반지나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좋아했던 일이 한없이 미안해졌다. 언제부턴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하물며 개개인의 인생사는 거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소중하고도 소중한 생의 여정을 걸어가는데 있어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은 얼마나 스스로의 길에 적극적이었느냐에 따라 그 높이가 결정된다는 것을 부산의 동아대학교 공과대학 교수이며 한국측량학회 회장이신 박운용박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반성어린 마음으로 되짚어보게 되었다.

박운용회장께서는 "지금까지의 삶, 돌아보면 참 운이 좋았다."는 말로 얼버무리려 하셨지만 짧은 시간을 통해 긴 인생역정을 들으며 그분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1940년 경주시 두동면 천전리, 일명 잠방곡에서 출생한 박회장은 두동초등학교, 두광중학교, 경주공업고등학교,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집안이 너무도 가난하여 중학교는 우여곡절을 치르면서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친구들이 사온 입학원서 중에서 우연히 남는 한 장을 얻어서 쓴 뒤, 어렵게 쌀 한 되를 구해서 경주공고에 시험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시절, 당당히 1등으로 입학을 하여 장학생으로 3년을 보냈다. 부산대학교에 시험을 보러가던 날 합격 못하면 죽어버리겠다는 생각을 품고 떠나셨다고 하니 그 절박한 심정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5.16 직후 어지러운 때에 부산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임용이 어려웠고 때마침 일어나는 건설 붐을 지켜보며 동아대학교 토목과에 다시 도전하여 졸업을 했다. 그러나 군 제대 후의 국내사정은 여전히 어려웠고 1965년 동해초등학교를 초임지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맡아 애써봤지만 6개월을 채우고는 견딜 수가 없어 순위고사를 치렀는데 1등을 하여 경남 하동중학교로 발령이 났다. 하동에서 1년 재직한 뒤 울산공고로 옮겨 전공인 토목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나 토목과가 폐과되는 바람에 3년 후인 1970년 국립 부산공업고등전문학교(부경대학의 전신)로 자리를 옮겨 10년을 재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 3월부터는 동아대학교 토목해양공학부 교수로 25년째 재직중이다.

박운용회장의 동아대학교 연구실을 통해 배출된 박사는 현재로 23명이며 퇴임 전에 30명을 채울 것이라고 하신다. 현재까지 학회에 발표된 논문은 박사학위논문을 비롯하여 200여 편에 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18권 째를 저술 중에 있다. 책을 펴낼 때마다 받는 인세는 책으로 대신 받아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강의 자료로 써오셨다고 하니 제자를 사랑함에 있어서도 적극적임을 보여주셨다. 1997년부터 1999년, 부산 울산 경남지역 토목학회 지부장을 역임하였고 전국 토목학회부회장을 지냈다. 2004년 4월 전국측량학회 회장에 피선되면서 부산에 3일 서울에서 4일이라는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신다.

 

2003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측량학회학술대회가 있었고 올해 여름에는 이스탄불에서, 겨울에는 중국과 호주에서 학술대회가 있을 예정인데 그 자리에서 박운용회장의 논문발표가 큰 비중을 차지할 거라며 국위선양에 많은 공을 세우고 있음을 주위 분들이 전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고향의 일에도 늘 앞장서 왔는데 부산의 경주공업중고등학교 동창회 회장, 서라벌산악회 초대회장을 역임하셨다. 다정하기로 소문난 부인 손수용씨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셨는데 장남 현규씨는 부산정보대학 전자통신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장녀 현미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출가하였고 차녀 현아씨는 동아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부산 반송에 있는 혜성병원 내과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차남 현영씨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운이 좋아서 많은 행운을 만났다면서 이제부터는 남아있는 시간, 모든 여력을 동원해 사회에 되돌려 주려 한다는 박운용회장님. 고향 경주에서는 깊은 존경과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