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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출향인 홍성관선생 / 2004년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20. 14:29


 

평범함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삶, 부산의 홍성관선생

 

 

 

 

 

 



동네 어귀의 야산에서, 가깝게는 황성숲이나 삼릉에서 흔하게 만나게 되는 나무는 소나무이다. 지혜로운 우리의 선조들이 삶의 터전 가까운 곳에 무한정 심어놓은 소나무, 그 자체로서의 가치는 제쳐 두고라도 우리 인체에 이로운 물질을 가장 많이 뿜어낸다는 이론까지 겸하고 있다. 곧게 뻗은 소나무에 돋아나는 여린 솔잎마저 정직함을 잃지 않고 하늘을 향해 쫘악 손을 내민다. 우리는 스쳐 지나치다가도 쉽게 그의 손을 잡고 싶어한다.

홍성관선생이 그랬다. 그 분이 어느 자리에 있으면 그 자리에는 생기가 일어나고 많은 이들이 자연스레 모여든다. 낯설지 않은 싱싱함을 영원히 잃지 않을 것만 같은 선생을 몇 번인가 만난 후의 느낌은 결코 낮지 않은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 자리를 낮추는 삶으로 일관해 오셨음이 진하게 전해져 왔다.
1935년 경주시 충효동에서 태어난 홍성관선생은 경주초등학교, 경주중.고등학교, 대구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다. 1959년 경주시청을 초임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나 5.16후인 1962년 시험을 통해 현재의 보훈처공무원으로 재임용, 대구를 거쳐 경주시청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1966년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더 깊은 인연을 따라 부산에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부산에서 대단한 규모를 자랑하던 자동차부품 제작 수출업체인 '신신기계공업사'를 처남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회사의 상무이사로 취임하게 된 것이었다.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80년대 초부터는 택시 운수업체를 운영하였으며 현역에서 물러난 지금도 부산광역시 운수단체(버스, 택시, 화물)인 '봉우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부산으로 내려가기 전부터 경주초등학교동창회장을 18년 간 역임하게된 홍성관선생은 부산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경주중고등학교 부산동창회의 필요성을 느꼈고 여러 동문들과 뜻을 모아 1968년 5월 19일 창립총회를 가졌다. 그에 따른 모든 준비를 몸소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당시에 만들어진 동창회신조는 뜻이 고귀하여 전국 동창회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초대 총무를 시작으로 8년 간 동창회총무를 맡았다면 그 열정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직장에서도 가장 왕성하게 일하던 때였으므로. 1974년 뜻을 같이하는 동문들과 동창회장학회 설립을 결의하고 당시로는 거금인 2,000만원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현재 경주중고등학교 부산동창회 장학회는 상당한 규모로 발전되어 있다고 하니 그 보람 또한 크실 것이다. 그로부터 36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동창회와 뜻을 같이 하였고 여전히 원로로서 감사의 역할을 확실하게 해내고 있다. 젊은이들도 어려워하는 마라톤 완주(경주벚꽃마라톤, 부산국제마라톤)를 해마다 성공하여 세간을 놀라게 하시는 선생은 무엇보다 스스로의 관리에 최선을 다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주에는 매주 첫째 토요일에 올라오시는데 50년 친목을 유지하고 있는 '경주 수서향우회' 회장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부산의 유명한 산악회인 '황령산산우회'에서도 회장을 맡고 있다.

요즈음 홍성관선생의 또다른 보람은 '남양 홍씨 종친회' 일이다. '남양홍씨부산종친회 상근수석부회장' '사단법인당성사적보존회 감사' '남양홍씨대종중중앙종회 감사' 직을 수행 중에 있는데 뿌리를 찾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일은 참으로 흐뭇하다고 하셨다. 서악동에서 출생하여 경주여고를 졸업한 부인 도옥희씨의 내조가 오늘의 선생을 있게 하셨다며 착한 부인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웃으신다. 장성하여 사회의 일원으로 맹렬히 활동중인 3형제를 두고 계시는데 장남 의문씨는 부산에서 사업가로 촉망받고 있으며 차남 의주씨는 'SK주식회사'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막내 의수씨는 서울에서 공직생활을 훌륭하게 수행 중이라니 얼마나 뿌듯하실까.


"기회는 많았지만 명예를 탐할 줄 몰랐다. 비영리 단체일수록 몸과 마음을 바쳐 성심껏 일해왔다. 동창회나 종친회, 일반사회단체 일에 임했을 때 마음가짐을 의무감이 아닌 자의에 의한 열정으로 일관했다. 보람 있는 날들이었다." 선생이 남기신 말씀 너머로 싱그러운 소나무 향이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