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발표칼럼 및 산문

영남일보 문화산책 - 오솔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2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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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1 10:36:48 입력

[문화산책] 오솔길

 

 

황 명 강시인
 
 
 
더위를 밀어내며 다가서는 가을을 느낀다. 며칠 전과는 달리 서늘하게 스며드는 바람과 흐릿해져가는 매미울음이 무덤덤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어제는 한동안 잊고 내버려두었던 오솔길을 찾아 두어 시간 걸었다. 공원 한쪽으로 난 한적한 길은 몇 년 전부터 오래된 나무벤치를 나에게 내어주고 있다.


언제든지 반갑게 맞아주고 말없이 보내주는 오솔길.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어떤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이런 길을 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안타깝게 흘러가버린 인연들을 떠올렸다. 시위에서 멀어져간 화살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면 몇 달 만에 찾아온 나를 나직한 목소리로 반겨주는 길을 걸으며 확실한 내 편과 함께 오랜만에 편안했다.


나무와 흙과 바람과 풀잎과 나는 처음부터 하나였고 이 세상에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뿔을 키우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은 하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일상에서는 잊고 지낸다. 코스모스가 누군가의 눈길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제 존재 가치를 다하기 위해 꽃 한 송이 피우듯이 우리의 삶 또한 그래야 하지 않을까. 많이도 두리번거리며 걸어온 나를 그 길의 이름 없는 풀꽃들이 넌지시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있는 사람, 오솔길 같은 사람이 나에게는 세 명쯤 있다. 도라지꽃을 좋아한다는 나에게 작은 도라지꽃 화분을 들려주며 어긋난 논리로 떠들어도 반박하지 않고 바위처럼 멀찍이서 지켜봐주는 친구, 비오는 날 바람 많은 날 어김없이 내 신변을 걱정해주는 언니, 마주보면 하얀 백지처럼 늘 가지런한 동생. 가슴이 너무 작은 자신을 드러낸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아픔과 상처를 함께 해 줄 내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앞으로는 오솔길을 걸으며 더 많은 이들을 그 길로 불러들일 것이다. 내 마음이 욕심 없는 풀잎이 되었을 때 누군가 걸어들어 올 것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 요즈음, 그것이 어떤 연유에서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