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춘추> 선물
황명강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훤한 창을 통과해 볼을 쓰다듬고 있는 햇살을 느끼며,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이나마 나누어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냉장고에서 꺼낸 둥굴레차로 긴 밤의 갈증을 달래며 식구들을 위해 쌀을 씻는 일은 얼마나 큰 기쁨인지. 햇볕이, 바람이, 밤새워 흘러온 강이, 아침밥을 기다리는 식구들의 웃음이 나를 향해 나누어준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그것들이 녹아있는 마음을 어딘가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부지런히 집안 일을 거두고는 길을 나선다.
많이 낡았지만 7년 동안 말썽부리지 않고 덤덤하게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자동차가 단번에 시동을 건다. 고마운 일이다. 팔이 잘려나간 가로수가 팥 알갱이 같은 싹을 밀어내며 웃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오늘 인연 맺게 될 살아있는 모든 것들, 먹고 만지고 내버려야 할 쓰레기까지, 그것은 일상이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커다란 선물임을 알게 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론을 통과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어제란 이미 깨어버린 꿈이라며 스스로를 달래어 봐도 포기되지 않는 꿈들은 왜 그리도 많던지. 기쁨보다는 원망이 먼저 앞서던 길을 어렵게 걸어와서 돌아보니 상처마다 잘 여문 씨앗이 가득 들어차 있음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이제는 아기를 데리고 힘겨워하는 세탁소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손을 흔들거나 먼저 말을 건네는 일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알고보니 세상에는 내편이 훨씬 많이 있었고 나도 누군가의 편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생겨난다.
어제는 어떤 분에게서 세 권의 책을 선물로 받았다. 유명 만화가의 작품인 '한국사 바로보기'란 책이었는데, 역사의식이 사라져 가는 신세대들에게 아주 유익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냥 스치기만 해도 좋을 인연인데 책까지 선물 받게 된 감사함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이렇듯 즐거운 기분을 전파시키는 것이 선물이지만 아무리 큰 선물이라도 받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그 값어치는 사뭇 달라진다. 가볍게 던지는 말 한마디라도 고마워하며 기꺼이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감이요. 날마다 누군가를 향해 선물을 주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웃음에 의미를 실어 보내자. 담장의 개나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눈길처럼. 차 한 잔을 나누고 헤어질 사람에게 상대를 위해 가장 필요한 말, 가장 감동적인 말을 찾아서 선물하고 편안하게 바라보는 가족들에게도 저녁에 찾아든 어둠 전부와 그 어둠을 밝히고 있는 따스함을 몽땅 선물로 안겨주자. 그렇게 많은 선물을 주고받는 세상이라면 우리의 아이들은 마음껏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 것이다.
입력시간 : 2005-04-08 18:1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