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고적지, 명소 소개

2007년 5월, TBC 아침에 만난세상 출연 -감포가는 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18. 00:22

 

 

덕동댐에서 대왕암까지- 2007년 5월 //TBC 아침에 만난세상 출연 후 쓰다. 

 
   




감포 가는 길


-덕동댐에서 대왕암까지-



그때 나는 어디쯤에 있었을까? 문무대왕의 감포행 행렬이 추령재 솔향을 휘감으며 등꽃 환한 봄을 건너고 있을때...


일상에 쫓겨 감포를 드나들 때와는 달리 작정하고 천년 전의 발걸음을 찾아나선 길은 출발부터 느낌이 달랐다.

연료를 숯으로만 사용했을 만큼 한때 영화를 누렸던 서라벌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처럼, 경주 전체를 들어올렸다가 다시는 내려놓을 것 같지 않던 벚꽃의 함성이 어디론가 자취 없이 흩날려간 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감포 길에는 싱그러운 초록이 굽은 산자락을 펼쳐보이고 있었다.


그리운 이름들 게워내고 있는 덕동댐에서부터 여행은 시작되었다.

박물관에  서있는 고선사지 3층석탑이 바람결에도 소식을 묻는 곳. 덕동호수 아래 잠든 명실마을을 뒤로 하고 추령재를 걷는다.

재를 관통하는 추령터널이 개통된 이후로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추령재 옛길. 한 시간을 걸어도 지나가는 사람 없는 한적함이 더는 길이 아닌 것처럼 쓸쓸하다. 아니면 산새소리에 깊어진 길이 누군가의 가슴에 제대로 된 길로 새겨지고 있는 중인지..., 사람의 길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바쁘고 화려한 시절일수록 내면의 길을 따라 한적하게 걷기는 어려울 터이니 말이다.


추령재를 넘어 기림사로 향했다. 불교를 중히 여겼던 선덕여왕 때에 창건한 절로 광복 전까지만 해도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린 큰 절이었는데 요즈음은 사세가 역전되어 불국사의 말사가 되어있다.

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어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쉬었다는 기록의 기림사길을 걸으며 원효대사가 디뎠을 발자국에 어리석은 내 발자국을 겹치며 걸었다.

 

삼천불전 앞에 그림처럼 휘늘어진 불두화를 배경으로 찍는 몇 컷의 사진.

그토록 대단한 원력을 지녔었다는 원효대사의 자리, 매월당 김시습이 거닐었던 길도 이렇게 아득한데 사진 몇 장 남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전해지는 마음 누르며 불두화처럼 웃는다.

 

기림사를 돌아나와 당시의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로 알려진

감은사로 향했다.

양쪽으로 펼쳐진 들판을 벌리면서 달려가는 길은 속이 확 뚫리도록 시원했다.

언제 무너졌는지도 모른채 동탑과 서탑을 불쑥 내던져 놓고 무성한 세월의 숲에 주저앉아 있는 감은사.

신라 문무왕이 부처님의 원력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절을 짓기 시작했으나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었고 아들인 신문왕때 완공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서 가장 큰 감은사지 석탑에 가만히 귀를 대어 보면 돌을 나르는 힘센 사내들의 음성이 들리고 국그릇 나누는 아낙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경주가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소리들을 통해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시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왕암이 저만치 바라보이는 바닷가에는 때마침 바람이 세게 불어댔다.

동해의 용이된 문무왕이 먼 바다를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중이겠다 싶어 손 내밀어 바람을 만져본다. 경주에서는 바람결에도 처용이, 천관녀가, 문무대왕의 옷깃이 서걱거린다.

왕들의 무덤인 거대한 고분군들을 끼고 생활해온 경주인들에게 인식되는 문무왕의 존재는 어쩌면 파격적이라 하겠다.

 

삼국통일을 완성한 왕으로서, 산처럼 거대한 능을 거부하고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동해에 뿌리라고 유언했음은 나라와 백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절절히 느껴진다.

감포 바닷가, 설핏 지나치면 몇 점의 바위에 불과한 대왕암을 통해 정치인이나 이 시대를 경영하는 각계의 인사들은 깊은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경주에서 감포로 달려나간 길은 누군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림으로 멈추어 있는 길, 천 년 뒤에도 저리 편하게 푸른 역사책 펼쳐 읽고 있을 것인가!

 

 

기림사 경내 불두화

 

감은사지

 

추령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