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경주인 - 대구
고향사랑 지극한 재구 외둉향우회 오진필 회장
대구광역시 시의원과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의원으로 부의장을 지냈던 오진필 재구 외동향우회 회장을 만났다. 고속도로, 일반국도, 산길 가릴 것 없이 두루 달려왔을 긴 여정의 시간이 가늠되지 않을 활기찬 모습이다.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의원 재임 후 동구청장에 출마해 구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던 오진필 회장. 어떠한 권력의 자리에 있었을 때에도 상대를 대하는 마음은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주위의 전언이 있다.
긍정과 열정을 동반한 오진필 회장 앞에는 늘 많은 문제들이 던져졌었고,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머뭇거리는 일 없이 해법을 내는 모습에서 주위 사람들은 그를 따르고 흠모한다.
300여 명이 단합된 모습을 내세우는 재구 외동향우회를 이끌고 있는 오진필 회장은 1945년 경주시 외동읍 개곡리에서 태어났다. 고려 중기의 학자요 문인으로 후세에 칭송받는 현정공 오세재 선생이 경주 입향시조라고 하니 경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오랜 뿌리를 확인하게 된다. 참고로 오세재 선생의 시는 ‘동문선’에 5언 율시 2수, 7언 율시 1수가 전하며 경주 황성공원에도 시비가 세워져 있다.
오진필 회장은 입실초등학교, 외동중학교, 경주고등학교 재학 중 대구 농림고등학교로 전학해서 졸업했으며 대구대학교를 나왔다. 바쁜 공직생활 중에도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과 대구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을 수료하는 등 이 부분에서도 오 회장의 열정이 드러나고 있다.
1966년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오진필 회장은 강원도에 잠시 머물다가 월성군에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업무 능력이 탁월했던 오진필 회장은 1979년 경북도청으로 영전돼 1990년 명예퇴임 시까지 많은 일들을 해낸다.
도청 재직 시에 농업분야에 관련된 업무를 했다고 회상하는 오 회장은, 당시 전국 증산왕을 5회 연속 탄생시킨 장본인이라고 한다. 전국 증산왕은 1회도 어려웠으며 상하 동료들은 그로인해 승진되었거나 큰 포상의 덕을 입은 이도 있었다고 했다. 오 회장은 당시 국가사회발전유공자로서 대통령 표창을 수여받았다. 또한 공직사회를 정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로 공직자윤리위원회를 지지했으며 소외된 공직인사제도를 고치는데 앞장섰고 예산 편성의 형평성을 강조한 앞선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1991년 김복동 국회의원 보좌관이 되면서 공직을 떠나 정계에 입문한 오진필 회장은 1995년 제 2회 대구광역시 시의원에 당선돼 내무위원장으로 활동을 폈다. 그 후 2002년에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의원에 당선, 2006년 6월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부의장을 지냈다.
주민들의 대소사를 적극적으로 챙기면서 정부로부터는 70억 원에 이르는 교부세를 받아내 많은 사업을 실행했다. 동구문화회관 주차장 시설완비, 재래시장 활성화, 아양초등학교운동장 인조잔디구장 완비, 대구동부초등학교 강당 건립, 동신초등학교 다목적강당 건립 등 대구 동구 지역에서는 오진필 회장의 공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재구 외동향우회의 출발에서부터 10년 이상 총무를 했고 현재는 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오진필 회장. 지난 가을에는 향우회원들과 함께 고향의 불우이웃을 찾아 성금을 전했고 고향의 농업현장을 방문해 위로금을 전달하며 격려했다. 함께 한 향우들은 오랜만에 고향을 돌아보며 모든 일에 앞장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오진필 회장께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지난 4월 경주국회의원 재선거 때는 정수성 국회의원 선거를 총괄하는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고향 경주를 맘껏 누렸다고 전한다. 현재는 국회의원 정수성 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말없는 후원을 보내고 있다.
오진필 회장의 사회 활동을 소개하면 민주평통 대구 동구 협의회장 역임 후 그 공을 인정받아 유엔사무총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동대구역세권 재건축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여전히 서민들의 편에 서 있는 사람. 우리는 그를 자랑스럽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태자씨와의 사이에 장남 영운, 장녀 소영, 차녀 지영씨가 있으며 고향에 돌아와 제 2의 청춘에 불을 지피고 있는 오진필 회장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오진필 회장은 “내 조상 대대로 뼈를 묻고 살아온 고향 경주는 아무리 사랑해도 넘치지 않습니다. 25년의 공직생활과 대구광역시 의원의 경험을 되살려 고향에서의 봉사를 펼쳐보려고 합니다. 한밤중에라도 나를 찾는 이가 있으면 지금도 달려갑니다. 오늘 누군가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라며 열정어린 목소리로 소박한 꿈을 밝혔다.
황명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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