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지면 발표詩

계간 '시와 반시' 2009 여름호 발표-'황홀한 교전'외 1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9. 10. 7. 10:26

계간 '시와 반시' 2009 여름호 발표시 '황홀한 교전'외 1편

 

 

황홀한 교전

 

 

황명강

 

 

1,

저것은 웬 반란의 징조인가 베란다 하수구에 척 걸터앉은 유채 한 포기, 찬바람이 기습적으로 출몰하던 때였으므로 저러다 말겠지 하며 한 주일을 보냈다 겨울을 건너온 가죽코트의 시간이 걸어 나가는 동안, 창 저쪽은 벚꽃의 개화로 밤낮 시끄러웠고 보수와 진보의 경계에서 바람은 길을 찾아 돌아다녔다. 꽃잎들 새로운 구호에 마음 뺏긴 채 독설을 줍고 세계평화를 마시며 흐드러졌던 열흘, 베란다에 생긴 일 따윈 까맣게 잊어버렸다

 

2,

벚꽃 일당이 밀려간 뒤의 평온이 기뻐서 보슬비같은 전화를 걸고 책장 먼지를 털던 토요일 오후. 그가 창을 밀고 날아들었다 스팸메일이 남긴 바이러스처럼 물컵에 식탁에 앉은 유채향은 고요한 봄날을 두드려댔다 고물고물 거실을 휘저으며 킬킬거리는 웃음, 뽑아버릴 걸 지금도 늦진 않아 두 사람의 내가 싸우는 동안 그는 빨래건조대가 목표인 양 무시로 팔을 뻗었다 목에 뭐가 걸린 듯해서 자주 물을 마셨지만 누구도 내가 물 마시는 일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3,

저녁 뉴스 시간, 아기를 품은 아프간 여인이 죽은 남편 곁에서 울고 있었다 신김치처럼 알알한 뉴스였으므로 적당히 수저를 들다가 와인을 마셨다 밤늦도록 그녀의 어린 아기와 자동차 바퀴에 깔렸던 강아지 울음을 즐겁게 들이켰고 이튿날은 머리가 많이 아팠다 모른다는 것이 영원히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다음날은 탄피처럼 널브러진 꽃의 잔해를 쓸어모았다 나를 향해 장전했던 유채의 봄, 그가 스스로 돌아설 때까지 당분간은 빨래를 방에서 말려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 속 총구를 가만히 내렸다

 

 

 

 

 

 

 

 

장마전선

 

 

황명강

 

 

현관문 열고 들어서자 달콤한 연기 거실을 허둥거린다 냄비 속 나란히 누운 타다 남은 옥수수 유골! 얼른 뚜껑을 닫는다 이틀에 한번 통증클리닉 찾는 골다공증은 어머니 입만 풍선처럼 부풀려놓았다 화살은 노인정 다녀온 아버지께로 날아간다 보름 전에 태워먹은 꼬리곰탕이 끈적끈적하며 굽은 어깨에 달라붙고 깨진 장미꽃무늬 물잔도 한자리 처억 차지한다 냄비를 닦는 동안 연기는 눈 게슴츠레 뜨고 거실을 돌아다닌다 열린 창으로 들어온 베란다 반사열까지 합세해 아버지를 달군다 초코바 양갱 바나나우유 우루루 쏟아내며 비겁한 방관자는 오늘도 딴청 부린다 근래 들어 내 안의 길이 질척거리는 이유가 여기 있는가 목소리 절뚝거리는 팔순의 아버지, 뽀얗게 깎은 복숭아를 약첩처럼 기대는 어머니께 건네며 TV 리모컨 눌러댄다

 

강바닥 마른 조약돌 같은 두 분 남겨두고 나오는 길, 돌아보는 백미러에 비가 고인다 햇빛 부실수록 더 세차게 퍼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