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칼끝에서 숨 쉬는 글씨와 그림!
서각 800점 속의 희노애락, 삼농 박상규 선생
“한마디로 서각은 신선하고 감미로운 예술입니다.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는 두려움과 아득함이 있지만 조금씩 완성으로 치닫다보면 육체의 고통은 별 문제가 아니지요. 20여년 넘게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힘 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바위산을 오르는 등산가가 왜 산을 오르는지는 그 자신만이 알듯이 서각 또한 경험해보면 대단한 매력이 있습니다.”
박상규 선생은 서각이 칼과 망치와 끌로 하는 작업이라서 힘들 것이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깨고 매우 감미롭고 매력적인 예술임을 강조하신다.
경주시 동천동 124번지. 시내에서 보문으로 향하는 길 좌측에 박상규 선생의 작업실이 있었다. 전기난로를 켠 채 작업에 몰입하고 있는 선생의 뒤편 벽면에는 제자들의 작품이 여럿 걸려있고 때 묻은 도구들이 오랜 연륜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서각으로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며 서각의 예술성과 중요성을 잘 입증하고 있다. 이미 달인의 경지를 넘어 진정한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는 박상규 선생의 작품 또한 지역은 물론 전국의 관심 있는 이들에겐 많이 알려져 있다.
삼농 박상규 선생은 1955년 경주시 현곡면 금장에서 태어났다. 토기와를 직접 굽고 판매하던 부친을 도와 가업을 잇던 선생은 어느 서예전시회에서 특별한 한 작품을 만나게 된다.
평면을 벗어난 글씨가 살아있는 듯 선생에게로 다가섰던 것이다. “그 때가 1989년이었으니 칼끝 위에 서서 살아 온지도 20여 년이 되는 셈이다.”며 선하게 웃으신다.
제자들에게 공모전 응모를 권하지 않을 정도로 작품의 진정성을 중요시 할 뿐, 밖으로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던 선생이 작년 10월엔 제자들과 함께 서각 초대전을 열었다고 한다.
어려운 초서일수록 완벽한 해독을 한 뒤에 각을 하라고 강조한다는 박상규 선생.
공무원, 기업인 등 10여 명의 제자들 또한 서각을 통해 스스로를 수양하는 한편 스승이 추구하는 예술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초보자도 몇 개월만 제대로 배우면 완성작을 얻을 수 있다는 서각은, 많이 힘들 것이란 선입견으로 입문을 망설이게 된다는데 선생과 함께 하면 편하게 배울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술가로서의 고집을 깊숙이 숨겨 둔 선량한 모습의 박상규 선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800여 점의 작품을 완성하였고 이제부터는 직접 쓴 글씨를 각하는 한편 오랜 전통을 가진 경주 서각 발전에 디딤돌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특히 서각은 자기의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바위에 새겨진 선사시대의 문양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듯이 인간에게는 자기를 남기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주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좋은 작가들의 글씨를 각하는 작업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의 재주가 지역사회에 작은 보탬이 된다면 그보다 보람 있는 일이 또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선생의 얼굴에서 진정한 예술인의 경주사랑이 느껴졌다. 언젠가는 경주의 어느 문화거리에서 선생의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