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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신문 |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의 삽질, 또는 한 걸음의 발자국으로부터 길은 시작됩니다.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든 무슨 일에 처하든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딘가 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릴 테니까요”
서울에서도 최첨단의 거리인 서초구 서초동 ‘김태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태하 변호사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시원시원한 말투와 그 말 속에서 튀는 싱싱한 언어들이 기자의 고정관념을 깨트리기에 충분했고 질주하는 자동차만큼이나 뚜렷한 목적지를 향한 의지가 엿보였다.
오늘도 서울의 한 법정을 걸어야 한다는 김태하 변호사는 1956년 경주시 배반동에서 태어났다. 동방초등학교, 경주중고등학교, 건국대학교를 졸업했고 1984년 제 26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지금도 경주에선 후배들의 자랑으로 남아있다.
첫 발령지인 서울지검북부지청에서 강력부 검사로 부임한 김 변호사는 공무를 처리함에 있어 원칙을 고수했고 동료들에게까지 존경받는 검사생활을 보낸다. 그 후 대구지검의성지청, 광주지검, 서울지검의정부지청을 거쳐 1995년 대구지검에서 공직을 마무리했다.
초임부터 강력부 검사였던 김 변호사는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당시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사회에 몸을 던진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회오리가 몹시 몰아치던 때였으므로 국가를 위한 곧은 공직자의 자세는 누군가에게 흠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어떤 일에도 타협하지 않고 검사 본연의 길을 가려던 참 법조인에게 현실은 맞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김태하 변호사는 공직을 떠나 2001년의정부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다. 당시 의정부는 인구 30만 정도의 작은 도시였지만 적정금액의 수임료만을 받는 양심적인 변호사를 시민들은 쉽게 찾아내었다. 비공식적으로 운운되는 성공사례금 따윈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는데 그 이유를 물었더니 어려운 이들을 또다시 목 조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명한 답을 주신다.
“법을 공부하고 변호사의 길을 걷는 것에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나의 일처럼 먼저 들어주고 그것이 설령 어려운 사건일지라도 함께 해결하려는 애정이 꼭 필요하겠지요. 그것이 제가 갈 길이라 여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는 김태하 변호사의 말에는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후 서울 서초구로 자리를 옮겨 맹렬히 활동 중인 김 변호사는 이제 서울에서 중견 변호사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늘 그리운 고향, 경주중·고등학교 서울동창회에서도 여러 역할을 맡고 있는 김태하 변호사는 마음속에만 그리던 고향 경주로의 귀환을 계획 중이라고 귀띔을 한다.
올해가 저물 때쯤이면 경주의 첨성대 앞에서 그 뒷모습을 발견하게 될 런지 모른다. 아름다운 귀환을 기대하면서 김태하 변호사의 가족을 소개한다. 부인 윤정선씨와의 사이에 장남 영우(성균관대학교), 차남 규완(고려대학교), 장녀 연주(서초중하교) 삼남매를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