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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아픔아! 너는 내 이불이었다. 포항 이상열시인(2006년 3월)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3. 17. 14:47

 

사랑아! 아픔아! 너는 내 이불이었다. 포항 이상열시인

 

 

 


어떤 말도 하고싶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말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지금까지 알고 배운 수많은 단어들을 나열해 봐도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그 상대로부터 압도당했을 때, 그로 인해서 자신의 내면이 말갛게 드러나 보일 때. 아무것도 하지않고 가만히 있음이 상책일 때가 있다.

 

3년을 별러 포항의 이상열시인을 찾았다. 9년째 두무치 편지를 써 보내 많은 이들의 가슴에 따스한 불을 지펴오고 있다는 분, 입으로 그린 그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나무막대로 자판을 두드려 쓴 시와 산문집을 다섯 권 째 발간했다는 무성한 소문의 진원지가 가까워올수록 마음은 설렘을 넘어 초조해지고 있었다. 날씨는 너무도 화창했고 파도는 봄을 업어 나르는지 부지런히 굼실대며 가끔씩 건너다보았다.


어렵게 마련했다는 이상열시인의 소박한 아파트 거실은 다양한 장르의 문학서적과 사상전집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고 햇살이 환한 침대 머리맡에는 컴퓨터가 놓여있었다.

스스로는 손가락 하나도 가눌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라는 사실도 시인과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지워지기 시작했다. 지극히 온화하면서도 정제된 웃음과 해학, 여유로움을 지켜보는 일은 어려운 문제 앞에서 특별한 참고서를 만나는 기쁨이었다.

 

이상열시인은 1945년 포항에서 태어나 경주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이후 1972년부터 교직에 재직했으며 1982년 포스코 공단 내에서의 추락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시인의 홈페이지(www.dumuchi.com)에서 인사말을 읽다보면 오늘의 평온한 삶이 쉽지만은 않았음이 느껴지는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아래 입술에 금이 난 것을 보았습니다. 왜 이런 줄이 생겼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십여 년간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아래 입술을 깨물고 참아서 생긴 자국인가 봅니다. 신은 인간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넘어뜨린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것인 육신마저 떠나보낸 뒤 1989년 천주교 영세를 받게 된 시인이 영혼을 이끌어준 어느 수녀님께 감사의 편지를 보내면서 펜이나 붓을 입에 물고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영혼의 울림으로 쓰기 시작한 글은 솟대문학 신인상(91년), 솟대문학 본상(99년), 월간 조선문학 신인상(94년)을 수상하게 했으며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써내려간 나날을 모아 드디어 1994년 ‘누운사람 일어서기’라는 첫 수필집을 내게 되었고 오늘까지 시집 2권과 두무치편지를 묶은 2권의 산문집 등 총 5권의 책을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누워서만 지내면서 놓친 사계를 화폭에 담고 싶은 염원으로 시작한 그림은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대전’에서 특선의 영예를 선물했다. 여러 차례의 그룹전과 초대전을 열어 온 시인은 현재 세계구족화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임이 전해진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두무치편지’는 1998년 포항 대백갤러리에서 유화개인전을 가진 시인이 참석한 지인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면서 비롯되었다. 그 후 그르지 않고 띄운 편지는 올해로 9년째, 감사와 사랑과 겸손을 주제로 하는 글은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청량제가 되고 있으며 장애우들에게는 위로와 격려로 큰 힘이 되어왔다.

 

포항의 도호동에서 환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옛 이름에서 따온 ‘두무치편지’는 현재 360여명에게 보내지고 있다. “아픔을 친구처럼 여기며 산다.”는 구족화가 이상열시인은 조금도 지나치거나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봄을 맞고 있었다.

 

공기처럼 8년 째 시인의 곁에서 봉사하고 있다는 레지나님과 바쁜 일정에도 포항까지 동행해주신 대구의 ‘극동에치팜’ 윤경희사장님께 감사드리며 이상열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우리 사는 동안’ 너무 애쓰지 마세요./자신의 영혼을/ 보다 더 높이 올려놓기 위해서./너무 애쓰지 마세요./자신의 삶을/조금 더 행복 가까이 두기 위해서./다만,/감사하게 생각하세요./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