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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청 최윤섭 기획관리실장 2004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22. 00:27
 

경북도청 최윤섭 기획관리실장

 

 

 

 

어느 곳 어느 자리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나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듯 살아가면서 느끼고 바라보는 방향도 같은 가시거리에서 별반 벗어나지 않음에 우리는 동의한다. 도심을 질척거리는 비 내리는 풍경도 수양버들 휘감은 호숫가에 서 있으면 감동으로 다가오고 티 없이 고고한 백목련꽃을 무심코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어느 특정인에게만 주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동반자로 걸어가는 한 시대의 길 위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 된다면 사회적인 그의 지위가 어디에 있든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경북도청 기획관리실 최윤섭실장. 많은 이들이 그분을 좋아하는 이유를 함께 들어보기로 한다.


원칙주의 공직자의 자세에서 벗어남이 없으면서 최윤섭실장에게는 훈훈한 사람의 향기가 났다. 경상북도 전체의 살림을 기획하고 실행해야하는 위치에 있지만 자신감은 있으되 어떤 권위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1952년 경주시 양북면 두산리에서 9남매 중 차남으로 자란 최윤섭실장은 바다와 산과 형제들 사이에서 베푸는 사랑을 키워왔던 것이다. 지난 설날에는 9남매가 한자리에 모였다고 한다. 조카들까지 가족은 45명으로 늘어났지만 자랄 때처럼 화목하게 지내고 있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는데 외국이나 각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이 한 마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duam에 개설된 부친의 호를 딴 ‘노곡카페’는 가족들의 근황은 물론이고 자라나는 조카들에게는 삶의 교과서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갈등이 사라지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뭉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단다. 부인 오영희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었는데 장남 규식씨는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벤처기업에 복무하고 있으며 차남 규익씨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재학 중이다.

 

최윤섭실장은 송전초등학교, 양북중학교, 경주고등학교,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취득, 경북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 1975년 제 1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북도청 교관요원을 초임으로 공직의 길로 들어선 이래 경북도청 세무조사계장, 기획계장, 법무당당관, 국무총리실 사정총괄업무, 경북도청 재무국장, 달성군수, 경주시부시장, 경주문화엑스포사무처장, 구미 부시장, 도의회사무처장, 경북도청 기획관리실장, 국방대학교 교육수료, 국제화재단 시드니사무소 파견근무를 거쳐 지난 1월 경북도청 기획실장의 중임을 맡게 되었다.


최윤섭실장은 “바르게, 원칙대로 산다. 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시며 경북도청 내에 ‘선비정신함양회’를 몇 년 전부터 결성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기리고 옛 선비들이 나라와 백성을 위하던 정신세계를 공부하고 있다.

 

30여명의 회원들은 안동 도산서원, 양동마을 ,옥산서원 등에서 대학을 강독하고 서울 성균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직생활 중 많은 일을 해왔지만 경주부시장과 문화엑스포처장 재임 시에는 고향이었기에 애정도 깊었고 희비가 많았다고 한다.

 

제 1회 경주문화엑스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기에 혼신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고. 잉카유물 전시회를 위하여 페루까지 가서 문화부장관을 이틀씩 설득하여 성사시킨 일, 35개국에 달하는 각 나라의 문화예술단을 숙식제공만으로 유치하여 공연으로 이끌어낸 일, 문화엑스포 성공은 물론이지만 외국인들이 가지고 갈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을 고려하며 온몸을 바쳐 일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1998년 ‘홍조근정훈장’을 수여받는다.

 

 최윤섭실장의 언행이 일치함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경주부시장 재임시 전설로 전해오던 황룡사 대종을 해군탐사선 2척을 빌려 1개월간 동해바다를 뒤진 일이 있었다. 안타깝게 실패했지만 49만근에 달했다는 황룡사대종은 여전히 역사학자와 과학자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30년 만의 가뭄으로 보문호는 말라갔고 산불 또한 문화재를 위협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서천의 애기청소 지하수를 개발하여 덕동댐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관로파열시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었다. 최윤섭실장은 그 현장이나 산불진압에서까지 직접 지휘하는 쪽이었다. 그러한 사명감으로 오늘도 최윤섭실장은 도정을 살펴나가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연륜으로 고향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 드리며 가내의 평안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