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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건천초등학교동창회 이홍식회장 2005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20. 19:35

부산 건천초등학교동창회 이홍식회장

 

 





잘 익은 은행은 은행나무 아래 떨어지고 감홍시도 감나무 아래만 떨어진다. 떠나보낸지 수십 년 된 어머니 품이 못내 그립듯이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떠나온 고향은 그리운 법이다.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숨결이 살아있고 피워내지 못한 꿈 또한 그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심의 현실은 쉽사리 옷자락을 놓아주지 않기에 더욱 그립기만 한 고향. 그래서 동창회나 향우회가 생겨나고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은 동심을 찾아내고 고향 산하를 아로새기는 들국의 향기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부산의 건천초등학교 동창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각 기별 이사회가 구성되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으며 봄에는 야유회겸 정기총회를, 가을에는 부산시내 호텔에서 정기총회를 2차례에 걸쳐 열고 있다. 어느 동창회 보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건천초등학교 부산동창회의 중심에 있기란 그 책임감과 역할이 막중함은 거론의 여지가 없다. 4년째 동창회회장을 맡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홍식회장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경주와 연관된 여러 모임에서 이미 안면이 있는 분이었던 것이다.


이홍식회장은 1946년 경주시 건천읍 건천1리에서 2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유서 깊은 건천초등학교, 무산중학교, 경주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부산대학교 산업대학원의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1966년 부산의 '부산정기 주식회사'에 입사하여 20년 넘게 그 성실함을 인정받았고 1,000여명의 직원을 총 지휘하는 부장으로 근무하다가 개인사업을 꿈꾸며 퇴임하였다. 1983년 부산정기주식회사에서 내어준 500평에 '대일산업사'란 회사를 설립하여 기계가공, 열처리, 도금 등의 일을 시작했다. 오랜 직장생활에서의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고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였다.

 

 
1983년 부산시 협업화단지(무지개공단)에 부지를 분양 받아 공장을 지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주 생산품목은 자동차부품과 가전제품 부품이다.
어느 자리에서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홍식회장의 좌우명은 "겸손하고 바르게 살 것이며 내가 먼저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부인 조경자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 희룡씨는 고려대학교 졸업 후 시드니대학MBA 과정에 있으며 차남 희준씨는 코오롱그룹에서 재직중이다. 장녀 현정씨는 대한항공 스튜디어스로 근무하고 있다고 하며 자랑스러움을 극구 내보이지 않으려 했다.

 

 

이홍식회장은 경기가 좋지 않아서 모두들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기업인들은 이에 굴하지 말고 꾸준하게 열심히 일할 것을 강조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못 이룰 일은 없지 않느냐는 물음에 수긍이 갔다.


떠나온지 40여 년이 되어 가는 고향이지만 애정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신다. 한때 경주공업중고등학교 부산동창회사무국장을 6년이나 맡아 일했으며 '공우회'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경주공고 부산동창회의 '서라벌산악회'에도 빠짐없이 참여한다.
마음이 가는 곳에 몸이 따른다고 했다. 앞으로 함께 하는 많은 날들에 고향을 더욱 사랑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부산의 건천초등학교동창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