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춘추> 어버이날
황명강
5월7일. 이른 아침부터 친정어머니 전화를 받았다. 바쁜데 어버이날이라고 일부러 짬 내어서 내려오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맛있는 찬거리 준비해서 상을 차려드릴 요량으로 시장을 둘러보고 있던 참이었다. 오라는 말씀보다 더한 마음인 것을 이 딸이 왜 모를까. 오남매 떠들썩하게 키워서 출가시켰지만 출세한 자식일수록 바쁘고 부모님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살고 있으니 자주 찾아뵙는 일은 나의 몫이다. 안부전화 자주 하고 용돈 넉넉하게 부쳐드리는 것만으로 효도를 대신하지만 누구도 나무랄 수 없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어버이날 아침 카네이션을 두 분의 가슴에 달아드리고 부지런히 상을 차렸다. 마을 청년들이 준비한 경로잔치에 가자며 친구분들이 이른 아침부터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어느 딸은 돈을 보내고 맏아들은 옷을 사오고...등등. 둘러앉아서 자식들 자랑하기에 바쁜 어르신들을 지켜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옛날 같으면 손자들 재롱 마음껏 누리고 조석으로 뜨거운 밥상을 받았을 연세에 명절이나 어버이날 한번씩 들려주는 자식들이 효자인양 추켜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거푸집처럼 낡은 몸을 마음이라도 따뜻해야 잘 가누실 터인데 말이다.
얼마 전 출간된 어느 수필가의 글 중에서 병석에 누운 부친의 이야기를 쓴 대목이 있었는데 "직장에 갔다 돌아오면 한번 들여다보고, 목욕 시켜드릴 때는 힘 딸리는 부인을 도와 등을 밀어드리며 둘째인 본인이 모시고 있는 것만으로 효를 다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인가 그런 자신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부친이 '이렇게 하면 효자가 되나!'" 하시더란다. 작고하시고 난 뒤에 두고두고 그 말씀이 목에 걸린다는 회한 어린 글을 읽으며 자식된 도리를 다함과 효의 근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부모가 자식을 향하는 마음은 오로지 일방적이며 계산이 없지만 자식이 부모님께 효를 행하는데 있어서는 '도리'라는 단어가 가끔 통용된다. 그 차이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금이나 선물로 잠시의 기쁨은 드리겠지만 당신들의 마음을 얼마나 채워드릴 수 있을런지. 부모님 곁에 이부자리 깔고 누워 하룻밤이라도 같이 지내는 일. 하고 싶은 이야기 마음껏 풀어내시도록 맞장구 쳐가며 듣는 일. 외로움에 지친 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마주 바라볼 눈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부모님이 원하신 만큼 명예나 부를 누리지 못하는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나의 삶이 불효를 저지른 일인 양 죄송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평범하기에 일주일에 한번은 틈을 내어 당신들을 뵈러간다. 두 분이 우두커니 계시다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좋아하시는 모습에 맛있는 과일 한 개라도 생기면 들고 달려가는 것이다.
어버이날을 맞아 무슨 행사라도 치르듯 오고가는 이들을 바라볼 때 마음이 불편하다. 부모님을 향하는 마음에 정해진 날이 왜 필요한가.
입력시간 : 2005-05-13 17:5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