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교육청 이걸우 부교육감

우리의 가장 큰 명절인 설이 며칠 후로 다가왔다.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을 되새겨보면 몹시도 바람이 심하고 추웠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나뭇가지와 시름하던 얼음꽃은 고사하고 눈발이 날리다 그쳐버린 올 겨울이 따스해서 좋다는 생각보다는 염려스러움이 앞선다. 기후가 계절을 놓칠만큼 세상은 변화의 속도에 가속 폐달을 밟고 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감지되는 가슴의 진동이 아닐까. 경상북도 교육청에서 만난 이걸우부교육감은 따스한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그 전부를 느끼게 하는, 사람의 향기를 지닌 분이었다.
이걸우부교육감의 부임 소식은 대구경주중고총동창회 측으로부터 들었다. 행정고시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박사학위에 미국과 프랑스의 새로운 문화권의 공부를 많이 했다는 선입견을 두고 만난 이걸우부교육감은 지극히 경주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경주인 이었다. 1955년 경주시 구정동에서 출생하여 불국사초등, 경주중고, 부산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과 미국 아이오와대학을 졸업했다. 근화여자고등학교에서 평생 교직생활을 하시고 정년퇴임한 부친 이종목선생과 모친 최해선여사 사이에서 5남 1녀중 장남으로 어릴 적부터 근엄하고 알뜰한 가풍을 몸소 익혔다고 한다. 두 남동생도 현재 경주시에 있는 학교에 교직자로 재직중인 전형적인 교육자 집안이었다.
1981년 제 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함으로서 사무관자격으로 공직생활의 첫발을 내딛게 되는데 대구 교육청 교육지도계장 , 관재계장 , 예산계장을 지냈고 87년부터 해외파견근무를 하게 된다. 당시 미국의 아이오아대학에서 “교장의 역할에 대한 인식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 후 국내에 돌아와 많은 일들을 하게 된다. 교육부 교육제정과, 대학행정지원과 등에서의 업무를 인정받고 1996년 다시 해외파견근무를 시작한다. 주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대표부 교육관과 주 프랑스공화국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프랑스에 있으면서 이걸우부교육감 개인적인 성취감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아주 특별한 공적을 쌓는 일을 이루어내게 된다.
제 2차 ‘세계직업기술교육회의’ 유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 1999년 4월에 서울에서 이 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할 수 있었다. 나아가 ‘세계직업기술교육쎈타’가 서울에 건립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아태지역국제이해교육쎈타’를 설립, 한국에 본부를 두고 있다. ‘아태지역국제이해교육쎈타’란 문화가 서로 다른 아태지역의 청소년들이 서로 만나서 교류를 하는 장을 열어 그 이해를 돕는 기관으로 청소년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01년 많은 공적을 안고 귀국하였고 교육자원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교육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교육인적자원부 학술학사지원과장으로 교육인적자원부 총무과정으로 재직 중 2003년 11월 경상북도부교육감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신지식과 패기로 국내에서의 업적 또한 상당히 많지만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고 1993년 우수공무원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일만 간략히 전한다.
며칠 전 영남대학교 관선이사에도 취임한 이걸우부교육감의 일정은 상당히 바쁘다. 교육분야의 업무가 폭넓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상북도 교육청산하의 모든 예산 편성과 집행, 인사문제, 각 지역 출장 등 바쁜 업무 속에 묻혀 있지만 고향 가까이에 있을 때 효도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고 구정동에 계시는 부모님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어릴 적 소풍을 갔던 석굴암이나 불국사를 언제나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며 경주인임을 늘 자랑스럽게 여긴다고도 했다. 경주 월성중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재직하다가 현재는 내조에 여념이 없는 부인 김미숙씨와의 사이에 상준, 상관 2남을 두고 있다. 언제나 고향에서 보내는 성원 잊지 마시고 새해에는 행운이 함께 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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