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춘추 - 어머니의 동지
크리스마스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쉬움으로 거대한 도시가 술렁거리고 있다. 때아니게 촉촉이 내리는 이슬비만이 술렁임을 조금씩 가라앉히고 지나온 일년을 조용히 돌아보라고 마음 이곳 저곳을 똑똑 두드린다.
흐르는 강물에서 한 방울 물로 튀어 나와서는 존재할 수 없듯이 2002년 마지막 물줄기에 섞여 흐르는 내 마음이 올해 따라 많이 우울하다.
우리 삶을 살아감에 있어 그 결과가 좋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수정해서 다시 성공으로 끌어가면 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돌려놓을 수 없는 안타까운 벽. 그 앞에 서서 가만히 어머니를 불러본다.
지난 일요일은 동지였다.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긴 날이어서 다음날부터는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고 명절로 지낸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다리가 불편하셔서 팥죽도 끓이지 못하는 칠순의 어머니를 두고 돌아오는 마음속은 펄펄 끓는 팥죽 빛깔이었다.
누구보다도 정갈 하셨던 내 어머니, 유년의 빨랫줄에는 늘 풀 먹여 빳빳한 옥양목 치마저고리가 자리하고 있다. 넓은 앞마당을 뛰어다니며 놀다보면 팥죽이 시커먼 무쇠 솥 안에서 팔딱팔딱 뛰고 시루떡도 허연 김을 뿜으며 우리를 흥분하게 했었는데…….
요즈음 아이들에게 동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팥죽은커녕 밥에 들어있는 팥알을 골라내는 아이들. 몸이 성한들 먹을 사람도 없는 죽을 끓이실까.
둥근상에 둘러앉았던 오 남매의 죽 그릇은 오직 어머니 가슴속에만 남아 있으리라.
우리 나라는 일일 생활권 안에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내색도 못하고 자식 그리워만 하는 어머니들께 따스한 동지를 선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이만큼이나 아픈 곳도 많으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쾌유를 빌면서 두 손을 모은다.
황명강<시인회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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