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춘추 - 모과처럼
가을이 웬만큼 버티다 마지막 창문마저 닫을 이맘때쯤이면, 해마다 여지없이 비가 내렸다. 골목길 자동차 뒤를 무더기 지어 내달리던 낙엽들 힘을 잃고 방울방울 빗방울에 몸을 맡기며 왔던 곳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조용하다.
가슴이 열려있는 모든 이를 시인이 되게 하는 자연의 힘.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하는 까닭은, 늘 있어왔던 자리를 벗어나면 진정한 자신의 향기를 발견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 아닐까?
가장 사랑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상황에 따라서는 반대의 자리에 서 버리는 경험을 수없이 하면서도 습관처럼 사랑을 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 자꾸만 끌어들인다. 그것들이 집안을 채우고 머릿속까지 가득 채워서 우리들 삶은 언제나 무겁다. 늘 버리는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핸드백은 온갖 잡동사니로 부산하기 일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많은 과일 중에서 모과를 가장 좋아한다. 몸이 썩어 가는 순간에도 머뭇거림 없이 제 향기를 세상 속으로 퍼내고 있지 않은가. 그다지 곱지 않은 모양새이지만 누군가의 우울함을 가라앉히고 잃어버린 마음의 뜰을 되찾아 줄 수 있다면 화려한 이름이 아니더라도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길 원한다.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짜여진 틀을 쫓아 살지 않으면 남들보다 앞서기란 힘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게 해서 모아놓은 것들이 편리함을 위해서 잠시 쓰여질 뿐 영원한 자기의 것은 아니다.
나만의 방을 채우기 위해 무던히도 욕심부리며 몸부림 친 순간들이 돌아다 보인다. 버려야만 새로운 세계를 찾을 수 있으리란 선인의 말씀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날들이었다. 모과의 향을 끊임없이 취할 것이 아니고 스스로 모과의 마음이 되어 살아볼 일이다.
가진 것 다 버리고 나면, 진실로 자유롭고 향기로운 내 영혼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밖엔 비가 내리고 모과 차의 뒷맛이 깔끔하다.
황명강(시인회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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