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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신문 창간 20주년 특별기획 / 경주의 문화·관광 그 빛과 그림자 |
6,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경주역사유적지구’ |
2009년 03월 13일(금) 23:28 [경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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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릉, 재매정을 가다
<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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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릉 출입구 좌측에 있는 연못 |
ⓒ 경주신문 |
오릉을 들어선다. 아직 봄꽃의 개화는 이른 시기인데 스쳐가는 바람에 향기가 묻어난다. 출입구에서 능을 향해 곧게 뻗은 길은, 관광객이 대단한 예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우아한 풍경을 거느리고 있다. 좌측에는 물이 출렁거리는 연못이 있고 때마침 그 위를 유영하던 청둥오리 일곱 마리가 후두둑 날아오른다. 그 옛날 왕도 이 길을 걸었을까.
경주 중심가에서 내남 방면의 서남쪽 평지에 봉토분 4기와 표형쌍분 1기로 이루어진 오릉은 시조 박혁거세 왕, 알영왕비, 남해차차웅, 유리이사금, 파사이사금 등 신라 초기 네 박씨 임금과 박혁거세 왕의 왕후인 알영왕비의 능으로 전해오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사절요에서 오릉에 대한 신화가 전해지는데 뱀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곳을 사릉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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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숲에 둘러쌓인 오릉 정경 |
ⓒ 경주신문 |
고목이 된 소나무 몇 그루가 왕에게 허리를 굽힌 신하처럼 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쌍분을 위시한 5기 능의 크기는 일정치 않다. 그러나 천 년 이상 한 자리를 유지하고 있음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경주인의 저력이 바로 이런 정신에서 기인했음을 알 수 있다. 오릉을 가운데 두고 이어지는 소나무 숲과 산책길은 관광객에게 여유로움을 선물한다. 대능원 등의 타 유적지에 비해 찾는 이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더욱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신라 제1대왕인 혁거세왕은 박씨의 시조로 나정에서의 탄생설화가 유명하다. 매우 영특해 13세 때 6부촌의 왕으로 추대 받아 국호를 서나벌(徐那伐)이라 했다. 제2대 남해왕은 박혁거세 왕과 알영부인의 맏아들로 석탈해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사위로 삼았다고 한다. 3대 유리왕은 남해왕과 운제부인 사이에서 난 태자로 국가체제를 확립했고 왕위를 탈해왕에게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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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영정 입구 정경 |
ⓒ 경주신문 |
5대 왕인 파사왕은 유리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하며 유리왕의 아우 내로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4대 석탈해 왕 사후에 왕위에 올랐다. 전해 듣거나 교과서로 배우던 역사의 현장을 찾아 확인하는 순간, 그 기쁨과 놀라움은 경주 곳곳에서 접하게 되겠지만 신라를 세운 왕이 잠든 오릉은 더욱 확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용이 나타나 옆구리에서 여자애를 낳고 갔다는 알영정. 용모와 인품이 뛰어나 박혁거세의 비가 되어 백성들에게 박혁거세와 함께 이성(二聖)이라고 불렸던 알영부인이 탄생했다는 알영정은 대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작은 연못과 ‘알영정’이라 쓴 안내문 뒤로 돌판에 덮인 알영정이 있다. 그 앞쪽엔 박혁거세왕의 제사를 모시는 숭덕전이 있고 박씨 종친회에서 사무실과 손님을 영접하기 위해 운영하는 ‘예빈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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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향대제 준비 중인 숭덕전에서 |
ⓒ 경주신문 |
마침 숭덕전은 춘향대제 준비로 열려 있어서 관람이 가능했는데, 숭덕전에 상주하는 박주용 참봉과 박석주 사무국장을 만날 수 있었다. 숭덕전은 입구와 출구를 따로 사용해야 하며 가운데 길은 왕이 다니는 길이라서 건너갈 때는 두 손을 포개고 고개를 숙여서 걸어야 한다.
숭덕전왕릉참봉협의회는 2년에 1번씩 참봉을 선임하고 전 참봉은 이곳에 상주하며 능 관리, 제전 주관 등 천년 역사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재매정>
첨성대와 대능원을 지나 작은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조금 진입하면 사마소(조선시대 과거에 합격한 선비들이 후학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던 곳)가 나오고 그 우측으로 재매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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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을 막기 위해 돌판이 올려져 있는 재매정 |
ⓒ 경주신문 |
남천의 물도 잡초에 깃드는 바람도 그때처럼 흐르고 재매정 또한 물이 많이 고여 있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는 우물이라서 물이 탁하다. 1993년 발굴 당시 조사된 내용으로 재매정은 바닥 지름이 1.2m, 깊이 5.7m의 매우 큰 우물로 잘 다듬은 돌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안전을 고려해 긴 돌판 2개를 얹어 놓았다.
삼국유사에는 서라벌 35체의 금입택 중에 김유신 공의 재매정택이 기록돼 있고 김유신 장군이 전쟁터로 떠나며 말 위에서 우물물만 마시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재매정 입구에는 김유신장군의 출전도가 세워져있다. 재매정 옆의 비각에는 조선 고종(1872년) 때 경주부윤 이만운이 쓴 유허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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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매정 입구의 김유신 장군 출전도 |
ⓒ 경주신문 |
여러 고분군 유적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재매정이야말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관광객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빛과 그림자>
오릉은 대형주차장을 갖추었고 경내 환경 또한 신라 시조왕릉과 어울리는 고풍스러움을 지녔다. 그러나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는 그다지 성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산책로를 따라 오릉과 알영정을 보고 돌아서는 사람들에게, ‘신라 시조왕의 묘를 찾으면 1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는 등의 기분 좋은 스토리를 제공하면 어떨까. 멋스러운 산책과 같은 단조로운 관광은 현대인들에게 밀려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재매정에서는 물을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매정 터 밖의 어느 지점에 우물을 재현해서 물을 한 병씩 팔면 어떨까. 경주시의 수입에 앞서 이 또한 즐거운 체험관광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김유신 출전도는 여러 컷을 준비해 세우면 어린이 관광객에게 인기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오릉과 재매정 모두 휴지 한 조각 없는 깨끗한 관리를 유지하고 있다. 상쾌한 방문이었다.
황명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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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강 기자 violetdy@naver.com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경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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