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경주역사유적지구’ 월성지구를 가다(첨성대, 계림, 반월성)
경주시 인왕동 839번지를 걷는다. 찬바람 속에 섞인 빗방울이 걸음을 잡아당기지만 수없이 적셔지고 말랐을 첨성대 앞에서 추위를 셈할 수는 없다. 오늘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석굴암지구(1995년)와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중 시내 중심가에서 가까운 곳부터 찾아봤다.
난생 처음 경주를 방문한 이방인, 낯선 관광객이 되어 걷기로 작정한 첫 코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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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비가 시급한 첨성대 기념품 판매소 |
ⓒ 황명강 기자 |
| <첨성대> 대릉원 주차장에서 첨성대로 향하는 길은 겨울임에도 아름답고 멋스럽다. 빛이 바랬지만 잘 가꾸어진 잔디가 왕을 모신 융단처럼 포근하다. 그러나 첨성대 출입구에서 그 환상은 깨진다. 매표소의 작은 창으로 무표정하게 표를 내주는 매표 직원. 평상복 점퍼차림의 50대 남성이다. 작은 창이 나있는 초라한 매표소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주보이는 곳에는 문화해설사가 근무하는 공간이 있고 근무시간 중에는 언제든지 요청만 하면 해설에 응한다는 설명의 안내 글이 부착돼있다.
출입구를 찾아 문을 두드렸더니 해설사 3명이 상주하고 있었고 내·외국인 해설에 대한 장단점을 들려주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매표소와 문화해설사 상주 공간 모두 유적지의 가치에 비해 초라할뿐더러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형창을 통해 종사자와 관광객의 교감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깔끔한 제복과 미소, 상냥스런 언어가 경주를 찾아온 손님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위로를 줄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첨성대 앞에는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간단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요즘은 디지털 시대가 아닌가. 가상 첨성대가 놓인 안내판에 별과 달이 떠있고 그것을 관측하는 신라인의 모습, 표정의 변화까지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유치원생들이나 초등학생, 심지어는 어른들도 동심의 세계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유적지와 체험관광을 분리하기보다는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출입구에서 의견충돌이 있는 한 가족을 만났다. “대전에서 온 가족입니다. 밖에서도 훤히 보이는데 왜 표를 끊어서 들어가자고 하는지 원…….”
아버지라는 이는 결국 첨성대를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서 멀어져갔다. 관람 가격이 비싸더라도 관광의 차별화가 이루어진다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첨성대 관광으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 요구된다. 첨성대 턱 앞에 설치된 휴지통과 70년대식 기념품 판매소도 21c 관광객들에겐 매우 낯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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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가 찬기파랑가비가 계림의 운치를 더해준다 |
ⓒ 황명강 기자 |
| <계림> 연꽃이 무성했던 연꽃단지 도랑을 끼고 계림으로 향한다.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이 숲에는 왕버들,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의 고목이 어우러져 신비스런 느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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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물왕릉 뒤편, 철구조물이 미관을 해친다 |
ⓒ 황명강 기자 |
| 김알지의 후손으로 첫 왕위에 오른 미추왕(13대), 그 조카인 내물왕(17대)으로부터 신라는 경주 김씨에 의해 통치되었다. 고대국가의 체재를 갖춘 내물왕의 능이 계림에 위치하고 있음은 여러 의미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곳은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고 숲 사이로 도랑물이 흐르고 있다. 가을 낙엽과 겨울의 스산함마저도 관광객의 추억에 한 몫을 하리라.
계림 들어서면서 오른편에 보이는 누각을 만난다. 김알지 탄생신화가 담긴 ‘시조탄강’ 비가 작은 문을 열어둔 채 누군가를 기다린다. 조선 순조 때 세워졌다는 이 비는 지나치는 관광객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안내 글이나 한 줄의 표지판도 없으니 한문 해석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궁금함이 당연하다. 계림에서 꼭 짚어보아야 할 또 한 곳. 충담사가 지었다는 ‘찬기파랑가’ 향가비다. 1986년 경주시와 김동욱 문학박사, 이동호 조각가, 한영구 서예가의 합작품인 이 비는 찬기파랑가로 인해 이 시대의 작품으로 후대에 전해질 것이다.
전해오는 향가가 25수인데 단 한 편만이 비에 새겨져 읽힌다는 것이 문화관광 도시인 경주의 품격에 좀 못 미친다는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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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변경을 요하는 반월성 밤범초소 |
ⓒ 황명강 기자 |
| <반월성> 계림에서 우측으로 나서면 반월성, 석빙고 안내판이 보인다. 그러나 반월성에 올랐는데도 이곳이 신라의 궁터인 반월성이란 안내가 없다. ‘석빙고 가는 길’이란 팻말이 보일 뿐이다.
안압지 쪽 진입로에는 안내판이 있으나 그것으로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는 일이다. 처음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어리둥절할 일이다. 여름엔 잡초가 무성하고 겨울에는 삭막함이 더하는 신라의 궁터에 낯선 여행객이 마음 붙일 안내판이나 벤치가 군데군데 설치돼야 함은 당연하다.
우리의 큰 관심 안에 있는 이곳이 언젠가는 복원될 것이고 천년의 시간이 되돌아올 날을 기대하고 있지만, 그때까지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석빙고로 향하는 길 왼편에는 궁터에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푸른 사각의 컨테이너가 덩그렇게 놓여있다. ‘방범초소’라고 쓰여 있는 이곳은 잠겨있고 그 흔한 소화기 하나 비치돼 있지 않다.
맞은편 산책길에도 또 다른 컨테이너가 이쪽을 째려본다. 반월성에서는 시간의 무상함만을 건져 올릴 따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경주역사유적지구’ 중에서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 가장 가깝게, 그리고 많이 접근하게 되는 첨성대, 계림, 반월성을 돌아봤다. 이 주변의 자랑거리인 야경과 유채 단지, 연꽃 단지를 걸을 때면 경주시의 애정과 적극성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 범위와 깊이가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고 있으니 돌아오는 봄을 기쁘게 기다려본다.
그러나 경주 여행을 시작하는 관광객의 입장에서 걸어본 경주는 여전히 친절도가 결여돼 있으며, 재미있는 관광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 강하다.
관광객을 방치한다는 느낌이라면 좀 과한가! 우리 문화 속으로 깊이 끌어들이는 경주만의 향기가 절실하다. 이 시대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마음먹고 나선 여행지에서라면 더욱 당연한 일이겠기에 그들 스스로 왕처럼 화랑처럼 반월성을 거닐 수 있는 체험 관광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지나쳐가는 여행객에게 예쁜 마음 한 송이 쥐어서 보낸다는 우리의 생각들이 세계 속의 관광경주를 세울 것이라는 믿음, 의심치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