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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 있는 눈사람 - 박형준 시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25. 08:38

의자에 앉아 있는 눈사람

 


박형준

 


폭설이 내렸다

며칠이 지나도록 녹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버려진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의자는 때로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저녁 햇살에 반쯤은 몸을 내주고 있었다

일생토록 자신의 등으로

주인의 몸무게를 받아주던 늙은 조랑말처럼

무릎을 꺾고 풀썩 땅에 주저앉을 것 같았다

거기, 눈사람이 앉아 있었다

응달에서 천천히 녹아가며

버려진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 아이가 처머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꺾어다

떨어진 눈사람의 코를 붙이고 있었다

의자의 발밑으로

눈사람에게서 떨어진 물이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데

아이는 눈사람의 코를 만지고 있었다

일생을 다하고 곧 의자로서 생명이 사라질

낡은 의자를 위한 , 그런 경건한 저녁이

웅덩이에 그림자로 어른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