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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는 가방 - 조말선 시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25. 08:36

움직이지 않는 가방




조말선

 

 


움직이지 않는 가방을 들고 그가 돌아왔다 과묵한 가방이 그의 손에서 달랑거렸다 자크를 연 그의 입에서 하얀 이가 즐겁게 쏟아졌다 무거운 가방에 지친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큐 사인이 떨어졌을 때 관객들은 과묵한 가방을 주목했다 가방은 움직이지 않고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가방이 그를 들고 다녔을 뿐. 가방이 허공을 꽉 붙잡고 있었을 뿐. 가방이 오른쪽을 걷고 싶을 때 그가 재빨리 왼쪽으로 매달렸다 십 년의 유학생활 끝에 그는 더 이상 가방을 들고 다니기가 싫었다 가방에 끌려다니면서 가방에 배고파하면서 가방에 옷 색깔을 맞추면서 가방의 주인인 체하기가 싫었다 그와 가방의 관념을 바꾸었을 때 그는 움직이지 않는 가방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쟈크를 연 그의 입에서 즐거운 복종이 하얗게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