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 발표칼럼 및 산문

영남일보 문화산책 - 천관녀의 사랑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1. 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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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1 10:36:48 입력

[문화산책] 천관녀의 사랑

 

 

황 명 강시인
 
 
 
어제 저녁에는 갑자기 들려오는 빗소리가 반가워 귀한 손님이 오실 때처럼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맞았다. 오랜 무더위에 지쳐 늘어진 나뭇잎들은 어느새 귀를 세우고 빗방울과의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잠시 스쳐간 소나기는 오랜만에 시원한 여름밤을 선물하면서 늦은 잠까지 설치게 했다.

괜스레 마음이 들뜨면서 얼마 전에 다녀온 경주 천관사지가 떠올랐다. 김유신은 천관녀에게 있어 안타깝게 지나가는 저 소나기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많은 이들에게 일상화되다시피한 사랑이라는 말, 남녀의 만남을 쉽게 생각하고 쉽게 돌아서는 요즘 시대에 가끔은 신성함마저 깃들어 있는 전설 속의 사랑이 귀하게 여겨지는 때가 있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안타까운 사랑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절터 천관사지는 경주의 오릉(五陵) 동쪽 논 가운데에 있다. 남아있는 것은 무너진 탑의 잔재와 기와 조각이 전부였지만 천관녀의 사랑이 너무 애절해 마음먹고 그곳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세인들은 김유신의 효와 충성심을 일컫고 있지만 천관의 편에서 보면 참으로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랑이었으리라.


화랑 유신은 사랑하는 여인 천관의 집을 자주 찾았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어머니 만명 부인의 훈계로 천관과의 왕래를 끊는다. 그런 김유신의 결심을 모르는 애마는 술에 취한 주인을 천관의 집까지 태워 갔으나 김유신은 그의 결심을 헛되게 한 말의 목을 베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천관은 그런 유신을 사모하다 못해 스님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목숨을 끊었다고도 전해지는데, 훗날 김유신은 옛 여인을 위해 천관의 집터에 절을 세우고 천관사라 불렀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가슴에 새겨두고 일생 동안 사랑하는 것이 시대와 상관이 있겠는가. 남녀를 막론하고 그런 사랑을 한다면 사막화되어 가는 세상이 싱그러운 풀잎으로 출렁이게 될 것이며, 동네마다 방범초소를 설치하는 일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혼율 세계 2위라는 안타까운 현실을 돌아보며 떠나간 사람을 미워하기는커녕 일생을 걸고 사랑한 천관녀의 사랑을 한 번쯤 내 것으로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