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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명 강시인
그곳은 여름인 데도 낙엽이 흩날리고 있었고 눈 내리는 산길을 몸도 가리지 않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맞아주고 있는 눈길과 하얀 눈송이들이 궁금해 따라가다 어디쯤에선가 제지당할 수밖에 없었던 일은 이틀이 지난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창틀은 물론 지붕까지 흰색으로 칠해진, 그야말로 '하얀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살아오면서 하얀색이 그토록 강렬하게 내 주목을 끌었던 기억은 처음이었다. 냉철함보다는 무한대의 사랑, 포용, 가능성, 포근함, 출발, 격려, 도전, 위안, 휴식 등 그렇게 많은 단어가 떠오른 것 또한 처음이었다.
예순을 넘긴 화백의 화실에는 오랜 연륜과 그 분을 따라다니는 명성 만큼이나 많은 그림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사계의 풍광이 한 곳에 머물러 있는 데도 서로 마찰이 없었으며 이미 몇 생의 껍질을 벗고 있을지 모를 10여년 전의 포도송이가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반대쪽 벽면에는 그날 나도 모르게 걸어 들어간 문제의 설경이 걸려 있었다.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된 마법의 성같은 그 화실을 소개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름지기 스쳐지나갈 수만은 없는 '감동'에 대해 점검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고 있는 중이다. 그토록 빛나는 수백 점의 작품과는 달리 40년 이상을 그림에 몰입한 화가의 몸은 신경통과 관절염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10여년 넘게 시를 붙잡고 걸어온 나 자신은 시로 인해 얼마나 아팠던가. 가슴 어디엔가 피멍이 들었는가. 손에 꼽을 정도의 밤 몇 번 밝힌 일이 전부인 것을. 예술인이든 평범한 이들의 삶이든 상대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란 쉽지 않다.
'바로 이것이야!'라고 무릎 칠 작품을 꿈꾸며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도전장을 던지지만 감동이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림 속 청포도 송이에 스며들어 있던 따스한 작가의 마음이 전해져 왔을 때를 생각하며 작품, 돈, 명예에 욕심 부리기에 앞서 세상의 모든 것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이 가장 우선임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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