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의 취재수첩

현충일 특집 경주신문 848호 - 건천읍 송선리 정태환 여사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6. 10. 10:20

 

담장의 줄장미 눈부시게 울던 날

-눈물줄기 대신, 베 날랐다는 정태환 여사-

 



건천읍 송선1리 선동마을. 작은 골목 끝에 텃밭 딸린 정태환 여사의 자택이 있었다.

화단의 꽃들이 먼저 일어나 반겨주는 마당은 돌멩이 하나 없이 정갈했다.

전설처럼 듣던 분을 직접 만난다는 설렘과 이러한 역사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민족의 내력이 안타깝게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고모님을 애틋해 하면서도 존경한다는 친정 조카 정지순(주, 가람이벤트상조)사장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그러했더라도 한 가문의 대들보 역할로서 평생을 버텨 온 고모님의 삶을 요즘 시대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슬하에 혈육 한 점 없는 스물의 미망인은 양가 가문에 대한 신의와 시댁식구들을 향한 책임감으로 생을 희생했다고 봅니다.”

그랬다. 정태환 여사는 엄하다는 선동 정씨댁 7남매 중 3째로 태어나 1944년 16세 나이로 건천읍 신평1리 이기수 선생의 아내가 됐다. 결혼 후 학도병에 징집되었던 이 선생은 해방과 함께 돌아왔으나 학업 등의 사정으로 함께 할 시간이 적었다.

1951년 교원자격을 취득하고 부임을 기다리던 중 전장으로 떠나게 되었고 1952년 3월, 가까운 동지에 의해 의로운 군인이었던 이기수 선생의 마지막 모습만 확인되었을 뿐 행방불명 통첩을 받는다.

그날은 마침 삼을 삼아 베를 나르고 있었어요. 시조부님, 시부모님 계시는데 울 수가 있나요. 속눈물을 하염없이 삼키면서 베만 날랐지요. 시어머님은 병을 얻어 그해에 사망하시고 어린 시동생을 자식처럼 길러야 했지요. 시동생 셋에 시누이가 한 명, 시조부님과 시부님을 봉양하면서 먼 길을 지나왔네요. 그렇지만 단 한 번도 누굴 원망해본 적은 없어요. 그저 내 운명이거니 하며 살았습니다.” 

안동 권씨 종갓집 맡딸인 친정모친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정태환 여사의 모습은 꼿꼿함과 의연함이 엿보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꽃잎처럼 고운 사랑의 추억을 한 잎도 놓치지 않고 기억한다는 분. “신구학을 겸비한 사람이었어요. 학식과 인품이 남달라서 동네어른들이 귀히 여겼어요. 입대할 때 돈 4,000원을 남몰래 주면서 뒷모습 안보이려고 문 밖에 나오지 말라더군요. 못 견디겠거든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들판에서 일을 하다가도 읍내로 난 길 바라보면 그 사람이 저 길을 지나서 갔겠구나 싶어 혼자 많이도 울었다는 정태환 여사.

그렇게 수십 년이 흘러갔고 이젠 시동생들 모두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어 흐뭇하다며, 아기 때부터 키운 조카가 아들로서 효를 다한다고 자랑이 대단하시다.

경주시청에 재직 중인 아들 이종경씨는 정태환 여사가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 틀림없기에 며느리 박소영씨 또한 어머니를 진심어린 사랑으로 대한다. 승무, 승엽 두 손주의 재롱에 지난 세월이 다 묻혀간다는 정태환 여사. 그러나 단 한사람 모습만은 담장에 핀 줄장미처럼 아프도록 선명하다고.....

  


황명강 기자

 

 

 사진 -조카 정지순씨, 승무, 며느리 박소영씨, 승엽, 정태환 여사, 아들 이종경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