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662 날짜 2003/12/04 02:17:27
작성자 [경주신문] 조회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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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지월시인의 시세상】-23/황명강 시'빨래'
◈<연재>[경주신문]【서지월시인의 시세상】◈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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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신문]【서지월시인의 시세상】-23/황명강 시'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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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빨래
황 명 강
옥상 위에 물구나무선 양말과
가슴팍 내어주고도 느긋한 와이셔츠
은근히 달아오른 햇살 탓이었을까
첫눈에 마음을 섞는다
대추알같은 속삭임이라면
샛강도 수줍게 익어 간다고
바람이 부추기며 지나가고
잔주름 들이미는 길 위에서
홀로 곱씹어야 했던 옛사랑의
닳아빠진 비밀, 긴 팔이 감싸안자
양말은 웃음 되찾는다
온몸 물방울 빠져나가도
주저앉지 않으려는 하늘
날으고 싶은 그들
서로의 마음 달래고 있다
*황명강/경주신문 기자.
<해설>
인간의 삶은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가 뜨고 지기를 거듭하듯이 하루 세 끼 끼니도 그렇거니와 입었다가 벗었다가를 거듭하는 옷가지도 그렇거니와 잎을 달았다가 떨어뜨렸다가 하는 나뭇잎인들 다르랴.
이 시는 바로 그 옷가지인 옥상의 ‘빨래’를 통해서 보여주는 세계다. 옥상의 빨래는 자신만 널었으랴?. 아니잖은가. 수많은 여인들이 빨래를 널었을 것이며, 또 해지는 저녁이면 걷었을 것이다. 구슬아기(고구려의 여인으로, 난리에 깊은 밤 느닷없이 들이닥힌 한 사내를 병풍 뒤에 숨겨준 미덕으로 나중 안장왕의 왕비가 되었음. )도 처녀로 살아오며 자신의 옷가지를 빨래해 널었을 것인데 그땐 울타리에 널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면서 말이다.
먼저 시인은 옥상 위에 널어놓은 빨래 가운데 양말은 ‘물구나무’섰다고 표현하고 있고, 와이셔츠는 가슴팍 내어주고도 느긋하‘다고 아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배경효과로 바람의 이미지를 또 기발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부추기며 지나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문장표현의 절창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좋은 시란 완벽한 시란 한 구절도 한 단어도 쓸데없는 말이 없는, 모두 필요에 의해 앉혀있을 때 절창을 이루는 것이다.
핵심은 그 빨래, 즉 옷가지인데 지은이에게 있어서 그 옷의 개념은 ‘잔주름 들이미는 길 위에서 / 홀로 곱씹어야 했던 옛사랑의 / 닳아빠진 비밀’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는게 놀랍다.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신선한 세계로 다가오는 것이다. 또한‘홀로 곱씹어야 했던 옛사랑’처럼 지은이의 삶이 외롭고 쓸쓸했음을 잘 입증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 무료했던 일상의 체취가 묻어있는 것을 씻어낸 새 기분전환의 빨래로 널려있는 것이다.
'가슴팍 내어주고도 느긋한 와이셔츠 / 은근히 달아오른 햇살 탓이었을까 / 첫눈에 마음을 섞는다'라는 구절은 그래도 우선은 잘 표백되어 말려지는 가뿐함을 실감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문제는 잘 말려진 빨래가 옥상에서 걷어와 봤자 역시 다시 때묻고 닳아가는 반복되는 일상을 거절할 수는 없는 법, 그러니 번뇌를 벗어나는 일탈 즉, ‘날으고 싶은 그들’로 의미화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날아봤자 극락이나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새 사람을 만나 그의 옷이 된다는 것도 쉽지 않으니, 빨래들이 ‘서로의 마음’을 서로가 ‘달래고 있’는 것이다.
한 편의 시를 읽었을 때 다가오는 명징함이 있어야 하듯 바로 이 시에서 우리는 인간의 삶이 평탄한 것이 아님을 빨래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며, 인간의 고뇌나 업보가 잠시 씻겨졌다고 해서 그대로 유지되어 나아가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 특히 이 시에서 빨래줄이라는게 존재하는 한 빨래는 일상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추천사>라는 시에서 미당이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라고 춘향이의 말로 하고 있지만, 그 그네의 그네줄이 존재하는 한 춘향은 그네를 타고 하늘높이 올라가봤자 다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치와 다를 바 없으니, 그런 인간의 속성을 잘 말해준 한 편의 시라 할 수 있다.
*집필:2003년 11월 30일,밤 2시 22분에 씀.-서지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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