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강의 여행기록

황명강 -지난 2014년 12월 3일 중국여행 / 낙양, 중악, 서악, 서안 탐방기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17. 8. 8. 12:06

 

2014년 12월 3일, 경북여중군자강독회 중국 탐방 - 경북 여성의 정체성 찾아 나선 학술 답사


 

 

 

 

여성의 정체성 확립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발적인 수업실행 여성아카데미 여중군자강독회에서 수업을 들을 기회를 가졌었다.

경상북도 리더 여성들로 구성된 ‘여중군자강독회’는 인문학 수업을 통한 자기단련을 했

2014년 12월 3일, 회원 21명이 중국의 낙양, 중악, 서악, 서안 등 우리역사와 연결된 현장탐방에 나섰다.

 

지도교수 박희택 박사와 함께 출발한 탐방의 주제는 ‘인의와 구법의 고향 학술답사’였다.

유교와 불교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며 이와 관련된 한국과 중국의 연결 및 소통의 현장을 찾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여중군자강독회가 추구하는 것이 ‘여성군자운동’이라는

경상북도새살림봉사회

김춘희

회장은 “양성평등 시대를 맞은 21세기에는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부드러움과

포용의 여성성을 통한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부단한

자기함양이 필요합니다.”라며 학문적 정진과 이를 실천함에 스스로를 경계해야 됨을 시사했다. 

3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일행은 중원의 관문인 하남성 정주공항에 도착했다.

정주는 2모작이 가능할 만큼 기후가 따뜻하고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정주는 하남성의 성도이며 중국 철도교통의 중심지이다.

황하를 중심으로 이북은 하북성이고 이남은 하남성이며 태항산을 중심으로 산의 동쪽은 산동, 서쪽은 산서라고 한다.

중원이 곧 하남성이다. 옛날에는 예주라 했으며 중국 갑골문자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모래바람이 많고 밀농사와 옥수수 농사를 많이 한다.

하남성에는 중국 7대 고도 중에서 낙양, 개봉, 안읍 등의 3대 고대가 있다.

 



-소림사, 탑림에서 우리의 흔적을 찾다-

일행은 정주의 등봉시에 있는 소림사를 찾았다.

리프트를 이용해 숭산(중악)을 오르려는 계획은 바람이 거세어 무산되었으나

숭산의 중턱에 자리하여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소림사를 자세히 관람하는 기회를 가졌다.

소림사는 496년 선종의 시조인 달마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곳은 무술로 매우 유명한데 소림무술의 시초는 달마대사가 면벽수련을 하는 승려들의 건강을 위해

 5가지 동물의 움직임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하며 숭산에는 달마대사가 면벽한 현장도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8세에 입학해서 13년간 수업을 받는 무술학교가

이 지역에 수없이 많이 있고 학생들이 3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엘리트 코스인 이들 무술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면 사관학교 입학이 허락된다고 하니 경쟁 또한 치열하단다.

무술과 학업을 병행하는 중국의 엘리트들이 양산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소림사 정문을 나와서 서쪽 300m 지점에 탑이 수없이 늘어서 있는 ‘탑림’을 찾았다.

이곳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며 면적은 14,000m2로 248개의 불탑이 있고

이 가운데는 우리 조선시대 스님의 흔적도 있었다.

일정을 소화한 일행은 숙소에 돌아와 좌담회를 가지면서 앞으로 펼쳐질 중국탐방의 의미와

여성들의 지양해야 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용문석굴, 향산사, 백거이 묘, 관림, 정명도 정이천 묘-


둘째날은 중국의 3대 석굴 중의 하나인 용문석굴을 찾았다.

‘이수’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용문석굴과 향산사, 백거이 묘가 마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용문석굴은 400년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하며 관광객을 압도하고 있다.


신라 원측스님의 사리가 이곳 용문석굴 맞은편에 있고

측천무후의 모습이라고 하는 풍만하고 아름다운 봉선사 석굴도 마주했다.

십만 개의 석굴에 부처가 조각된 용문석굴을 인간이 조성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어서 일행은 맞은편 향산사와 당나라 3대 시인으로 불리는 백거이(백낙천)묘를 찾았다.
장개석과 부인 송미령이 머물렀다는 곳 향산사의 지붕은 모두 치미가 장식돼 있었다.

향산사에는 당나라 때 백거이 시인이 18년을 머물렀다고 하여 향산거사라 불렸으며

백거이 시인이 정신세계를 같이하는 벗들과 구노회를 결성해 자연을 벗하며 지냈다고 전한다.

향산사를 지나쳐 오르면 백거이 시인의 묘와 시인을 경배하는 후대 백씨들의 비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백, 두보와 함께 당대 3대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백거이는 벼슬과 문학적 성과를 동시에 이룬 시인이다.

그가 지은 작품의 수는 대략 3,840편의 시로서 ‘장한가’, ‘신악부’ 등 수없이 많다.

나는 당대의 시인 백거이 묘앞에 앉아 묘소에 돋아난 풀잎을 만져보았다.

졸시를 쓰는 한국의 시인이지만 시공을 초월한 그와의 교감에 눈물이 흘렀다.

 


-관림-
일행은 관림을 찾았다. 관운장의 묘이다.

도교에서는 관우를 신격화하여 전쟁의 신인 관성제군이라 부른다.

관우의 사당을 무묘라 하며 관우는 무의 화신으로 중국에서 추앙받는다.

우리나라에는 관왕묘나 혹은 관제묘라고 하며 주로 충청도, 경상도 지방에 몇몇 있고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동묘"가 바로 이 관왕묘 중 하나로 해마다 제가 행해진다. 
이곳 관림에는 관운장의 수급만으로 조성된 묘소가 있다.


-2정 묘-
이어서 주자학을 있게 만든 대학자 형제 2정묘를 찾았다.

이곳 역시 중국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가로 세로 각각 5km에 달하는

굉장한 인문학적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있었다.
공원의 입구에는 (2정인 즉) 정명도, 정이천 선생의 모습을 조각한 대형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두 학자의 부친을 포함한 정씨 가계의 묘와 비석이 조성되고 있었다.


중국 송대 신유학의 대가인 '정명도(정호)와 정이천(정이)‘을 2정이라 칭하며 후대가 존경하는 이유는

개념 사용과 논의 구조가 근원적 설득력을 가지며 성리학을 철학으로 발전시킨 대학자들이기 때문이다.

 

 



-화산, 서안야경-

셋째날인 5일엔 낙양을 출발해 서악인 화산에 도착했다.

이곳 화산은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에서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화음시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옛날에는 태화산이라고 불렸었다.


중국에서 가장 웅장하다는 5악의 하나로 해발 2,154m의 바위산인 화산은 중국에서

국가급 풍경구로 지정되어있다.

화산은 동, 서, 남, 북봉이 있는데 일행은 지난해에 개통했다는 서봉을 올랐다.

케이블카로 20여분, 장엄한 자연을 마주하고 겸손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케이블카에 내린 정상에는 많은 관광객이 화산의 장관을 마주하고 있었으며 우리 일행도

그 대열에 스며들었다. 

화음시에서 일행은 서안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삼국지에 나오는 관중평원을 지나 서안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다.

서안은 BC 11세기부터 도시가 형성되었다.

전한(前漢)의 수도였던 장안성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로

BC 202년 지금의 시안 바로 북서쪽에 세워졌다.

그 후 오랜 쇠퇴기를 거쳐 수(隋 : 581~618)나라가가 장안을 수도로 정하자 이곳은 다시 번성했다.

수에 이어 당(唐 : 618~907)의 수도가 된 장안은 크게 팽창하여 100만 인구를 자랑하며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도시 가운데 하나였었다.

당이 몰락한 후 장안은 상업 중심지이며 중앙아시아와의 무역중개지로서 그 기능을 계속 유지했으나

점차 쇠락했다고 하며 현재는 교육도시로 각광받는다. 
대학교가 44개 이상 있으며 항공핵심기술이 있는 첨단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서안에는

삼성전자에서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인구는 850여만 명, 장기거주자 150여 만 명을 합쳐서 1000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다.


특히 서안 북동쪽 약 32km 떨어진 곳에는 진시왕릉이 있고 처음 이 지역의 농부가 발견해

1974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병마용갱에는 세계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대흥선사, 대안탑, 진시왕릉, 병마용갱-

넷째날 찾은 곳은 대흥선사였다. 향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향을 피우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웅보전의 거대한 오방오불 앞에 향을 사르는 이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면서 일행도 향을 피웠다.

대흥선사는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에 있어 중요한 곳으로 중국 밀교가 시작된 사원이다.

밀교란 "부처의 깨우친 진리를 직설적으로 은밀하게 표출시킨 대승불교의 한 교파로

당시까지 발전되었던 불교사상의 두 주류인 중관학파의 공(空)사상과 유가유식학파의 유(有)사상을

동시에 계승, 발전시키면서 민간신앙까지 폭넓게 받아들여 불교적으로 정립한 교파이다.

특히 대흥선사가 우리의 발길을 잡은 이유는 신라의 많은 스님들이 이곳을 다녀갔고 혜초스님이 6년 동안

이곳에서 '왕오천축국전'을 썼으며 많은 경전을 번역한 곳이므로 일행에게는 바람소리마저 소중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어서 찾은 대자은사의 대안탑은 현장법사(삼장법사)와 신라의 원측스님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대안탑은 652년에 당나라의 고승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경전이나 불상 등을

보존하기 위해서 고종에게 요청하여 건립한 탑이라고 한다. 
현장법사에게는 2대 제자가 있었는데 규기스님과 신라에서 건너간 원측스님이었다.

탑이 먼저 건립되고 자은사라는 절이 세워졌다고 한다.


진시황제의 무덤을 찾아서 다시 이동을 했다. 먼저 병마용갱으로 향했다.

진시황제의 사후세계를 지키고 사후를 함께 하기 위한 실제 크기의 병사들과 전차, 갑옷, 동물 등

기원전의 역사가 눈앞에서 펼쳐지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이어서 병마용갱과 가까이 있는 진시황릉에 들러 발굴되지 않고 야산처럼 누워있는

무덤속의 진시황제를 만났다.

무한한 것은 인간이고 자연만이 말없이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현장이었다.



-한나라 경제릉-


다섯째 날, 서안을 출발하기 전에 약 2100여 년 전 한나라 왕 경제의 묘역 입구에 있는 갱도에 도착했다.

이곳은 1996년에 발견되었으며 진시왕릉과 마찬가지로 왕릉은 발굴하지 않고 사후 세계를

왕과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제작된, 흙으로 빚은 각종 인물과 양, 개, 돼지 등의 가축과 곡물 창고,

방직공장, 염색공장 등이 갱도마다 전시되고 있었다. 
한 경제는 고조 유방이 BC 202년에 건립한 한나라의 6대 왕으로서 아버지 문제와 더불어

‘문경시대’라 불리며 그 치세를 후대에 까지 인정받고 있는 왕이다. 

 
-마무리-
여중군자강독회는 4박5일 기간 동안 중국의 고도와 자연유산을 탐방하면서 역사의식과 자연을 통한 겸손과

여성으로서 우리시대를 이끌어나갈 명제들을 놓고 많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2012년 11월엔 공자, 맹자의 유적지를 찾았으며

2013년 12월에는 주희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현장 학습의 시간을 가진 바 있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스스로 자각하고 받아들일 때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라 믿으며

뜻깊었던 시간을 반추해본다.(황명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