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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배 교수의 음악산책(1) |
우리 삶 속에 녹아있는 음악이야기 |
2010년 09월 24일(금) 13:14 [GBN 경북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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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가 안종배 교수 |
ⓒ GBN 경북방송 |
9월 27일부터 '안종배 교수의 음악산책'이 GBN경북방송 특별칼럼 코너에 매주 게재된다.
경주 출신의 음악가인 안종배 선생은 경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안종배 선생은 경주중고등학교를 비롯한 중등학교와 대학교에서 2세 교육에 평생을 바쳤으며 오늘까지 그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우리지역 음악계의 산증인이다.
현재 경남대학교와 일본 나고야예술대학의 명예교수로서 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인 안종배 선생은 각 매체를 통한 집필활동 또한 왕성하다.
선생의 저서로는 '음악교수법','음악의 이해','서양음악 소사', '음악의 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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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인 기자 hyein2314@nate.com “열린 시각, 정직한 언론” - Copyrights ⓒGBN 경북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안종배 교수의 음악산책(2) |
금지곡(禁止曲)이 된 독일민요「로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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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9월 27일(월) 11:47 [GBN 경북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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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가 안종배 교수 |
ⓒ GBN 경북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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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한 마음의 문이 열리던 청소년 시절, 독일민요「로렐라이」를 즐겁게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작 독일에서는 금지곡으로 수난을 받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①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구름 거친 하늘아래 고요한 라인강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② 저편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그 색시 황금빛이 빛나는 옷 보기에 황홀하다 고운 머리 빗으면서 부르는 그 노래 마음 끄는 이상한 힘 노래에 흐른다 ③ 오고가는 뱃사공이 정신을 잃고서 그 색시만 바라보다 바위에 부딪쳐서 배와 함께 뱃사공이 설은 혼 되었네 아! 이상타 마음 끄는 로렐라이 언덕
「로렐라이」는 라인江 독일령에 있는 바위 이름이다. 예로부터 유럽의 남․북을 연결하는 대동맥으로, 지금도 교통량이 많은 라인江은 스위스 알프스에서 발원(發源)하여, 프랑스․독일․네덜란드를 통과해서 북해로 이어지는 국제하천(國際河川)이다. 그리고「로렐라이」바위가 있는 곳이 강폭이 좁고 물살이 세서 항행(航行)하는데 위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로렐라이; Lore Lei」는 ‘요정의 바위․악마의 바위’라는 뜻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 예로부터 이 바위 위에는 ‘물의 요정’이 소박하면서도 신기한 노래를 부르면서 아름다운 금발을 빗질하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가던 뱃사공이 요정의 아름다운 자태와 노래 소리에 현혹이 되어, 노 젓는 것을 잊어버리고 배가 바위에 부딪쳐 침몰을 했다 - 이러한 전설을 줄거리로 독일 낭만시인 하이네(H. Heine, 1797~1856)가 쓴 시에 작곡가 겸 튜빈겐 대학 교수인 지르헤르(F. Silher, 1789~1860)가 작곡을 하였다. 독일 나치스정권의 히틀러는 하이네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유태인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자신들의 민요「로렐라이」를 금지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세계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한 히틀러를 역사는 ‘독재자’로 기록하고 있다.
안종배 <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0. 9. 27. ahnjbe@yahoo.co.kr
안종배 교수 음악산책(3) |
국왕의 노여움을 풀어준 헨델 작곡 <수상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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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04일(월) 16:38 [GBN 경북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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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종배 교수 |
ⓒ GBN 경북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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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곡 할렐루야 작곡가로 유명한 헨델(1685~1759)은 독일 할레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에 가서 일생을 마쳤기 때문에 영국 사람들은 자기 나라 작곡가로 생각을 한다. 바하와 동갑(同甲)내기인 헨델은 종교음악 중심의 작곡에서 벗어나,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받은 영향으로, 오페라․오라토리오(메시아) 같은 극음악에서 불굴의 명곡을 남겼으며, 그 가운데서도 관현악 조곡「수상의 음악」은 지금도 자주 연주가 되는 명곡이다.
「수상의 음악」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 헨델은 독일 하노버 선거후 궁정악장으로 있으면서 1710년 휴가를 얻어 영국에 건너가 극진한 환영을 받았다. 당시 독일은 오랜 종교전쟁으로 침체해 있던 반면, 영국은 왕성한 개신교(改新敎)신앙심으로 사회 분위기가 활기에 차 있었으며, 이에 감동을 받은 헨델은 1712년 재차 초청을 받고 영국으로 다시 건너가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를 공연하면서, 당시 여왕(Anne, 재위 1702~1714년 년) 생일축하 송가(頌歌)를 작곡해서 연금 2백 파운드를 받는 등, 영국 상류사회의 인기를 끌면서 크게 환대를 받았다. 이 같은 환대에 만족한 헨델은 하노버의 귀국명령을 어기고 영국에 눌러 있는 사이, 1714년 그를 총애하던 여왕이 급서(急逝)를 했으며, 공교롭게도 자신이 배신한 하노버의 왕이 영국의 조오지 1세(George, 재위 1714~1727)로 취임을 하였다.
새로운 왕이 된 조오지 Ⅰ세는 헨델에 대한 노여움이 클 수밖에 없었고, 그를 괘씸죄로 궁정에서 추방을 하고 말았다. 궁지에 몰린 헨델은 그를 아끼는 귀족들과 상의해서, 국왕의 노여움을 풀기 위하여, 1715년 뎀즈江에서 국왕이 뱃놀이를 할 때, 다른 배에 악단을 태워 음악을 연주하면서 왕이 탄 배에 접근해 갔다. 강바람이 불어오는 상쾌한 분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듣던 국왕은 누가 연주하는가를 알아보았으며, 자신을 배신한 헨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동안의 노여움을 풀고는 그를 다시 궁정으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관현악 조곡「수상의 음악」은 메뉴에트․브레 등 22곡의 춤곡으로 엮어진 상쾌하고 즐거운 정취가 풍기는 작품이다. 최근에는 이 작품을 바로크시대의 고악기(古樂器)로 연주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으며, 클래식 음악 가운데서도 통속명곡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크 음악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비발디의「사계」와 함께 지금도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는 「수상의 음악」은 헨델이 야외에서 연주할 목적으로 관악기와 타악기로 작곡을 했으며, 후세 사람들이 현악기를 첨가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종배 <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0. 10. 4. ahnjbe@yahoo.co.kr
안종배 교수 음악산책(4) |
구애(求愛)의 노래 베토벤「엘리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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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2일(화) 00:59 [GBN 경북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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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종배 교수 |
ⓒ GBN 경북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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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피아노 소품「엘리제를 위하여」는 귀엽고 가벼운 곡취(曲趣)와 함께, 기교상으로 쉽기 때문에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면 노소를 불문하고 반드시 연주하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우리나라는 전자제품이나 휴대전화, 심지어 아파트 경비실 호출신호음으로 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사실은 악성 베토벤이 구애(求愛)의 심경을 간절하게 노래한 작품이다.
이 곡은 베토벤(1770~1827) 사후에 빈에 살고 있던 한 여성의 장서(藏書) 가운데서 악보가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거기에는「1810년 4월 27일 엘리제를 추억하기 위하여, 베토벤 작」이라는 친필로 된 글귀가 적혀 있어서 오늘날「엘리제를 위하여」로 사랑을 받고 있다.
당시 베토벤 주변에는 엘리제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했다. 20세기에 들어와 베토벤의 필적 연구가로 권위 있는 독일의 음악학자 막스․윙거 교수가 친필로 된 악보의 필적을 연구한 결과 난필(亂筆)로 유명한 베토벤이 텔리제를 엘리제로 잘못 기재했다고 발표를 하였다.
베토벤은 1827년 3월 26일 숨을 거두었으며, 다음 날 유족들 입회아래 그의 유품이 공개되었다. 이때 작은 문갑 속에서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불멸의 연인; 지금도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에게 보내는 열렬한 연서(戀書) 한 통이 발견되었다.
이 연서의 대상자가 누구인지 지금까지도 음악사의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런데 베토벤과 생전에 특별히 가깝게 지낸 세 사람의 여인 가운데 당시 17세의 텔리제․마르하티가 가장 유력하게 연구가들의 지목을 받고 있다.
물결치는 밤빛 머리카락에 열정과 재치가 넘치는 청초한 눈매로 빈 사교계에서도 평판이 높았던 그녀는 많은 남성들이 선망하는 미녀였다.
당시 40세의 원숙한 작곡가 베토벤은 17세의 텔리제․마르하티와 결혼을 바랐지만, 23세 연하의 소녀가 베토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신분상의 차이 때문에 베토벤의 구애(求愛)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가난하고 고집이 세고 귀머거리인 베토벤은 이 작품을 작곡한 1810년을 고비로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는지 그 뒤로는 아예 결혼을 입밖에 내지 않고 고독 속에 자신을 묻었던 것으로 보인다.
숭고하고 격조 높은 교향곡을 작곡한 거대한 철인(哲人)이, 한편으로 이 같은 사랑스런 작품을 남김으로써 베토벤의 간절한 구애(求愛)의 심정을 짐작할 수가 있다. 「엘리제를 위하여」을 들을 때마다 악성(樂聖)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연민(憐憫)의 정을 느낀다.
안종배 <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0. 10. 11. ahnjbe@yahoo.co.kr
안종배 교수의 음악산책(5) |
영화「아마데우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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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8일(월) 12:36 [GBN 경북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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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종배 교수 |
ⓒ GBN 경북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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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 되는 2006년에 온 세계가 모차르트를 기념하는 행사로 분주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이때 세계 언론은 250년 전에 태어난 천재 한 사람이 오스트리아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대서특필을 한바 있다.
모차르트는 전무후무한 음악의 신동으로 그의 오페라는 독일오페라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대구에서 한창 진행중인 2010년 국제오페라 페스티벌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모차르트의 오페라「코지 판 투테」를 공연하여 공전의 대성황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5년 미국영화회사가 제작한「아마데우스/희랍어로 신의 은혜를 받은 아이」는 신동(神童) 모차르트의 일생을 다룬 영화로, 지금도 가끔 TV로 방영이 되어서 시청자를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유럽의 여러 명승지, 특히 모차르트가 오페라「돈 죠반니」를 초연한 체코 프라하의 아름다운 경치를 영상으로 다루어서, 눈으로도 즐기는 음악영화로 성공을 한 작품이다. 그리고 동료 음악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스릴과 서스펜스는 관중들의 흥미를 더욱 북돋아 준다.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북부도시 찰스부르크에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철저한 영재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4세에 이르러 건반악기를 배웠으며, 5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였다. 6세 때부터는 공식 연주회에 출연했고 9세 때부터 오페라를 작곡하는 등, 음악의 신동으로 전 유럽에 이름을 떨쳤던 것이다.
그는 35년 10개월의 짧은 일생 동안 10년 2개월을 유럽 각국을 마차로 여행을 하면서 626곡에 달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피아노곡 117, 오르간곡 17, 바이올린곡 48, 교향곡 46, 협주곡 54, 조곡 33, 댄스곡 247, 오페라 22, 독창곡 40, 종교곡 66, 실내악곡 47곡 등, 음악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명곡을 남김으로써 지금도 세계의 음악계는 그의 작품을 숭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신비롭다고 말한다. 신비롭다는 말은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며, 바꾸어 말해서 악마적이라는 뜻으로도 해석을 할 수가 있다.
문호 괴테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해서 “영원히 풀 수 없는 기적”이라는 말을 했다. 음악의 역사에서는 지금도 이 기적은 풀리지 않고 있다.
모차르트는 무덤이 없어서 독살설로 시비가 일고 있다. 영화「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독살한 살리에리는 당시 빈의 궁정극장 최고의 작곡가인 반면, 모차르트는 귀족사회의 이단자로서, 변변한 직장도 없는 가난한 자유음악가였기 때문에 독살을 당했다는 말은 당치도 않다는 주장이다. 영화「아마데우스」의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한 생각이 든다.
안종배 <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남대학교․일본 나고야예술대학 명예교수> 2010. 10. 18. ahnjbe@yaho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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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N 경북방송 기사목록 | 기사제공 : GBN 경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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