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의
박라연
거주 만료된 몸을 나와 저승으로
가던 길목에서 문득 희로애락을 끌고 평생
수고해준 제 몸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진
영혼처럼 그녀
차를 돌려 살던 집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숟가락소리 웃음소리 서류와 옷
가구와 상처와
추억이 빠져나가니 싸늘히 식어버렸구나!
발을 뻗고 앉아 함께 견딘 시간들을 주물렀다
인공호흡까지 시켰다 입을 달싹거리며
아는 체하자 그녀
노자 돈 건네듯 움트는 동녘 햇살을 혀끝으로
떼어 덮어주었다 설익은 밥
그러니까 높고 외롭고 쓸쓸한 정신을
흉내만 낸 주인이었는데 오랜 세월 맛있게
먹어준 집에게 큰절하며 돌아섰다
누구든 여러 번의 이사를 하지요. 조금은 불어난 세간을 트럭에 싣고 난 후, 나는 텅 빈 방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가장 나중에 그 집을 떠나오곤 했죠. 장롱이 있던 자리는 가장 덜 손을 타 언제나 제일 깨끗했죠. 거울과 시계가 걸렸던 자리도 가만히 바라보았죠. 아내는 개수대에 그릇을 놓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죠. 수없이 걸레질을 해도 뭉치는 먼지들을 감당할 수 없었죠. 울고 웃던 식구와 추억이 다 빠져나간 집은 눈이 쑥 들어가고 생기가 없는 얼굴이었지요.
시간에도 공간에도 우리는 정이 들지요. 한솥밥 먹는 식구처럼. 한 채의 집은 한 구의 몸이지요. 내일에 대한 의지로 벽을 세우고, 궁리로 지붕을 삼고, 안쪽에는 뜨겁게 심장이 뛰지요. 식구가 아프면 같이 아파하던 집을 한 번 더 보았죠.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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